현대차 `월드카 발표' 이사회도 안거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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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월드카' 생산계획 발표를 둘러싸고 최종 합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가 자체 이사회도 거치지 않은 채 이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현대차와 이 회사의 사외이사에 따르면 현대차 경영진은 지난달 하순 임시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이 세계 자동차업계의 재편에 대한 대응책을 묻자 `금명간 유명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게 될 것이며 그때 이사회에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차는 그러나 지난 7일 이계안 사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미쓰비시자동차, 독일과 미국 합작법인인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소형차를 공동 생산하는 `월드카'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사회를 거치지 않았다.

한 사외이사는 "이번 발표 내용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면서 "오히려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 현대차에 전화를 했으나 최고경영진이 자리를 비워 회사측 입장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에 이사회가 열렸다면 이번 발표가 미쓰비시,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최종 합의된 것인지, 또 공동 발표를 할 의사는 없는지 등을 경영진에 물어봤을 것"이라면서 "이번 문제로 회사의 신인도가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5월중에 열릴 정기이사회에서 이사진에 보고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거래법이나 상법에 따라 지급보증, 증자 등의 경우는 당연히 이사회에서 사전에 협의를 하겠지만 당연히 회사에 이득이 될 사안에 대해서는 사후에 보고해도 무방한 것이 아니냐"고 덧붙였다.

현대차 정관은 이사회의 기능을 `회사 경영의 중요 사항을 결의하고 경영진의 집무 집행을 감독한다'고 명시해놓고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한국, BMW코리아 등 외국 자동차회사의 국내법인 관계자들은 "현대차의 월드카 계획은 회사의 장래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으로 이사회를 거쳐 합의한후 발표하는 것이 상식"이라면서 "회사에 득이 될 사안은 이사회에 사후 보고하겠다는 것이 오너 중심의 구시대적 경영관행"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 이사회는 정몽구 회장, 이계안 사장 등 사내 집행이사 4명과 김광년 변호사, 김동기 고려대 명예교수, 박병일 세무사, 카노코기 타게시 미쓰비시상사 임원 등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돼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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