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맥주 한 잔” 해병 영웅, 백악관서 꿈 이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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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14일 백악관 집무실 테라스에서 명예훈장 수상자인 예비역 미 해병 병장 마이어와 맥주를 마시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얼마 전 23살의 한 예비역 해병 병장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고 싶다고 의전팀에 지시했다. 미군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그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직접 통보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 예비역 해병 병장은 백악관 의전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업무시간에 걸려온 사적인 전화라는 이유에서다. 병장은 간접적으로 “업무 시간에 제대로 몰두해 일하지 않으면 봉급을 받을 자격이 없어진다”고 의전팀에 전했다. 결국 의전팀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했고, 오바마는 점심시간까지 기다려서야 예비역 병장에게 훈장 수여 사실을 통보할 수 있었다.

 현재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예비역 병장의 ‘간 큰’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렵사리 연결된 통화에서 그는 오바마에게 “(군 최고사령관인) 대통령과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간 큰’ 제안에 ‘통 큰’ 대통령은 흔쾌히 응했고, 둘은 훈장 수여식 하루 전인 14일(현지시간) 백악관 뜰에서 맥주를 마셨다.

2009년 아프가니스탄 쿠나르에서 복무 중이던 마이어 병장. [쿠나르 AP=연합뉴스]

 15일 오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명예훈장 수여식 때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한 일화다. 간 큰 행동을 한 사람은 미군의 최연소 명예훈장 수여자인 동시에 생존 해병대원으론 처음 이 훈장을 받게 된 다코타 마이어(Dakota Meyer) 예비역 병장이었다. 오바마는 훈장을 수여하면서 “다코타, 내 전화를 받아주어서 고마웠네”라고 농을 던졌고, 수여식에 참석한 250여 명의 하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마이어는 꼿꼿하게 차려 자세를 유지했다.

 훈장 수여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마이어 병장의 공적을 10분간에 걸쳐 자세히 소개했다. 2년 전인 2009년 9월 8일 새벽. 마이어가 속한 부대의 미군들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으로 이뤄진 연합 순찰대는 아프간 쿠나르 지역의 간즈갈 계곡을 지나다 탈레반으로부터 기습을 당했다. 당시 21살의 상병이었던 마이어는 부대원 4명의 시신을 수습해야겠다고 상부에 알렸다. 현장 지휘관은 위험하다며 만류했지만 마이어는 후안 로드리게스 샤베즈 하사와 둘이서 험비(경장갑 수송차량)에 올라 총탄이 빗발치는 적진으로 돌진했다. 샤베즈 하사가 운전을 하고, 마이어가 선 채로 기관총을 쏘며 험비는 다섯 차례나 적진과 아군 진지를 오갔다. 마침내 마이어와 샤베즈는 4명의 동료 시신을 수습한 건 물론이고, 포위당한 동료 부대원과 부상한 아프간 정부군 등을 구해냈다. 마이어는 네 번째 돌진 과정에서 오른팔에 총상을 입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훈장을 걸어주며 “다코타는 ‘형제와도 같은 부대원이 죽었기 때문에 실패’라고 내게 말했다”며 “하지만 마이어로 인해 오늘 36명이 살아 있고, 4명의 미군 전사자가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칭송했다.

 마이어는 영광을 독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마이어는 아프간에서 전사한 전우 4명의 가족들에게 추도식을 열어 달라고 요청해 그가 백악관에서 훈장을 받은 15일 전우들의 추도식도 각각 열렸다. 마이어는 수여식 전에 CNN방송 등과 한 인터뷰에서 “나는 할 일을 했을 뿐 영웅이 아니다”며 “이 훈장은 그날 목숨을 잃은 동료와 전투에 참가한 장병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명예훈장(Medal of Honor)=미 행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훈장. 전투 중에 국가를 위해 탁월한 공적을 세운 군인에게 국민의 대표인 의회의 이름으로 대통령이 수여한다. 수훈자는 특별보너스와 특별여행권, 매달 600달러(약 66만원)의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군 규정에는 없지만 상관이라도 명예훈장 수훈자에게는 먼저 거수경례를 하는 게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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