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그게 아니라..."

중앙일보

입력

아침 8시 반이 되면 난 거의 습관적으로 KBS 1TV의 〈아침마당〉을 본다.

〈아침마당〉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다른 구성으로 진행되지만 매주 보고 있으면 마치 지난 주에 보았던 것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부부탐구 코너는 정말 똑같다.

출연하는 부부는 바뀌었는데 나와서 하는 이야기는 지난 주에 출연한 부부와 다르지 않다. 나이든 노부부나 젊은 부부나 부부가 나와서 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 걸까?

부부탐구 코너에 출연하는 부부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는다.

보통 출연신청은 여자가 한다. 여성대상 프로그램때문이라고 하지만 왜 여자들만 TV에 나와서 불만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걸까? 부부문제가 아내에게 더 심각해서 혹은 불만을 터뜨릴 만한 적당한 분출구가 없어서일까?

그리고 아내와 남편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는 상대방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다소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짜증이 난다는 듯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그게 아니라"로 시작한다.

부부는 소위 일심동체며 흰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동고동락하는 배우자라고 하던데 출연하는 부부를 보면 오히려 친한 친구보다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같은 사건도 양쪽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전혀 다른 사건이 된다.

부부 사이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먼저 대화가 되려면 비슷한 경험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적 영역(사회생활)을 중심으로 살아온 남성과 사적 영역(가정 생활)을 중심으로 살아온 여성은 생활공간과 내용이 전혀
다를 수밖에...

생활공간이 다르면 사용하는 언어와 사고방식, 그리고 이해의 폭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예전부터 남녀유별이라는 사고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부부가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세대차이와 마찬가지로 여성과 남성 사이에는 성별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대차이는 인정하면서 성별차이는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다. 또 세대차이는 극복해야 한다고 하면서 성별차이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성은 여성의 삶은, 여성은 남성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이런 기회가 평생 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성별차이를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좀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더 이상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면 좀 더 행복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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