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총수일가 사재 출자론의 배경]

중앙일보

입력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되고 있는 현대투신의 부실문제 해결을 위해 정주영 명예회장과 몽헌 회장을 비롯한 그룹 총수 일가의 사재출자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정부 내에서 강력하게 표출되고 있다.

정부는 경영간섭 등에 대한 재계의 반발을 우려, 이 문제를 수면위로 공식화하지 않고 있으나 현대투신의 유동성 지원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명분 축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대주주는 물론 상징적인 의미에서 총수 일가의 사재출자가 필요하다는시각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시장의 투명성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개선되면서 소액주주의 권한이 확대돼 대주주인 현대전자나 현대증권이 투신에 출자하는 데 한계가 있는만큼 몸을 던지는 자세로 오너일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투신부실 대주주 해결엔 한계= 현대투신의 부실규모는 정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올들어 정식으로 실사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투신은 부실규모가 1조3천억원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시장은 대우채 손실분담 8천억원을 포함 1조5천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조3천억원이든 1조5천억원이상이든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고려할 때 현대투신의 부실규모는 대주주인 현대전자나 현대증권이 해결하기엔 벅차다고 정부나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투신의 지분은 현대전자가 27.59%, 현대증권이 24.22%, 외국펀드인 CIBC 7.97%, 우리사주 5.08%이며 나머지는 개인및 일반투자자가 갖고 있다.

그러나 이미 현대전자는 국내외 투자자들의 동요를 의식, 투신에 돈을 넣지않겠다고 공식 선언했고 현대증권도 자금동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전자가 투신 부실해소에 소극적이고 현대증권 혼자 떠맡기엔 벅차다면 도대체 부실을 어떻게 조기에 청소할 수 있겠느냐고 정부는 반문하고 있다.

현대투신이 고유계정의 부실을 메우기위해 고객재산인 신탁재산에서 차입한 연계콜 3조원 처리도 숙제다.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연말까지 투신의 연계콜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현대투신이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콜금리 수준의 장기 저리자금 2조원도 이 연계콜을 우선 해소해 급한 불을 끄겠다는 발상이다..

▶시장의 인내심.온정 기대할 수 없다=현대는 작년말 현대투신의 부실을 2년에 걸쳐 내년까지 해소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올해초 8천억원을 증자한데 이어 내년말까지 외자유치 2천억원, 자회사 지분매각 7천억원, 유가증권 매각 6천억원 등 2조원을 자체조달해 부실을 털어내겠다는 계획이었다.

정부는 그러나 현재의 시장동향을 볼 때 외자유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등 계획이 너무 안이하고 낙관적인데다 구체성도 결여돼있어 부실해소 방식을 보다 구체화하고 일정을 대폭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의 부실이 5월중 해소되면 대형 3투신 가운데 현대투신만 '부실의 섬'으로 남게되는데 시장이 내년까지 인내하고 온정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가 무슨 말을 해도 시장이 제대로 믿지않는 상황에서 현대투신의 부실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면 한투와 대투의 경영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시장불안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그동안 현대가 지배구조개선과 그룹 분리 등 경영투명성 확보와 투자자보호와 관련, 시장에 많은 약속을 했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었다면서 대우 김우중 회장이 '말의 신뢰'를 잃은 것이 대우 좌초의 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현대도 뼈저리게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금지원 명분이 있어야 한다= 현대투신은 과거 정부의 뜻에 따라 한남투신을 인수하면서 본 손실을 만회하고 연말로 닥친 연계콜 해소시한을 충족하기위해 2조원 정도의 증권금융자금을 저리로 지원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재벌금융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은 특혜라는 여론의 비판이 들끓는 상황에서 명분없이 거액의 자금을 지원할 수는 없다는 자세다.

정부 관계자는 현대가 과거 한남투신을 인수하면서 정부의 고민을 덜어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2조원의 증권금융자금이 지원된만큼 이를 빌미로 정부에 다시 손을 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기업이 이익을 쫓아 투자를 했다면 그에 대해 책임도 져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현대가 추가로 증권금융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명예롭고 타당한'명분을 먼저 제공해야 하며 그 방법으로 대주주의 출자와 부족한 부분에 대한 총수일가의 '십시일반'이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현대그룹 스스로 현대투신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 그 방법과 일정을 빠른 시일내에 명확하게 시장에 제시해 이해를 구해야 하며 이를 보고 증권금융 자금의 지원 규모와 조건을 결정하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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