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쪽 난 강정마을 … 식당·수퍼 따로 가고, 친목회도 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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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공사가 본격 재개됐다. 5일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관계자들이 크레인을 이용해 테트라포드(일명 사발이) 연결용 구조물을 옮기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사업단은 이날 공사 부지 정리작업과 함께 항만 접안시설을 만들기 위한 해상 적출장을 조성하는 공사를 재개했다. [연합뉴스]


4일 오전 10시30분 제주도 강정마을 입구. 해군기지 건설 반대 미사 현장에 있던 주민 2명이 곁을 지나던 40대 주민을 막아섰다. 반대 주민들은 “당신이 여기에 왜 왔어?”라며 고함을 쳤다. 순간 얼굴이 붉어진 주민은 “내가 사는 마을 길도 맘대로 못 가느냐”며 황급히 길 건너편으로 향했다.

 해군기지 건설로 불거진 강정마을 주민들의 찬반 갈등이 심각하다. 2007년 해군기지 부지 선정 이후 주민들은 두 편으로 갈리고, 마을은 찢겼다. 반대 주민들은 찬성 측 사람이 나타나면 자리를 피하기 일쑤다. “국가 안보가 중요하다”며 시작된 말다툼이 ‘멱살잡이’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찬반 주민들이 이용하는 상점이나 식당도 다르다. 반대 측 주민들은 얼마 전부터 강정초등학교 쪽의 A마트만 이용한다. 도로 맞은편의 B마트는 찬성 주민이 많이 간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3일 열린 반대 문화제에서 B마트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 반대 주민들이 마트 입구에 서서 A마트를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기 때문이다. 반대 주민들은 또 경찰 등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에는 발길을 끊었다. 이 때문에 일부 식당 주인은 외지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

 해군기지 건설로 불거진 찬반 양론이 주민들의 공동체를 무너뜨린 것이다. 심지어 일부 주민 사이에선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아들이 찬성하는 아픈 부모를 병원에 안 모시고 간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한 주민은 “해군기지 때문에 마을 친목회와 계가 다 깨졌다. 강정마을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향약이 잘 운영될 정도로 주민들 사이가 좋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5일 해군기지 공사가 재개됐지만 마을은 여전히 둘로 갈라져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사장 내 굴착기가 부지 작업을 위해 땅을 파헤치고 덤프트럭 4~5대는 부지런히 흙을 실어 날랐다. 현장 구석에 방치됐던 400t짜리 대형 크레인은 해안가 쪽으로 옮겨져 적출장 설치공사에 투입됐다.

 전문가들은 공사 재개를 계기로 주민들의 갈등을 봉합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전체 사업비의 14%인 1405억원이 투입되고 보상까지 완료된 마당에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으로 주민들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제주도 출신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대책으로 인해 ‘해군기지가 미군기지가 된다’는 오해가 커지면서 갈등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며 “정부가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갈등 해소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과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5일 직원조회에서 “도민도 국가가 있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해군기지 건설은 ‘공장을 짓는 사업이 아니라 안보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우 지사는 “정부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주해군기지사업 조사소위원회는 6일 해군기지 건설 공사현장에 내려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건설사업이 2007년 12월 예산안 처리 당시 국회가 제시한 민군 복합형 기항지의 요건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검증한다.

제주=최경호·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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