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토지분쟁 서방과 충돌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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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의 흑인들이 백인들의 토지를 강제 점령하면서 불거진 흑백간 토지분쟁이 영국 등 과거 식민지 종주국들과 피지배국이었던 아프리카 국가들간의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은 사태가 악화할 경우 유럽 이주민의 후손인 백인 농장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하겠다는 입장이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항전을 결의하고 있다.

◇ 전쟁 가능성〓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27일 "영국.독일.포르투갈 등이 백인 사망자가 늘어날 경우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신속대응군을 투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 고 보도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도 이날 "우리는 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는 영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을 경우에 대비해 오래 전부터 비상대책을 수립해놓고 있다" 고 밝혔다. 짐바브웨에는 현재 농장을 경영하는 영국 시민권자 2만5천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은 "무가베 대통령은 백인 농장을 점거하고 있는 흑인들을 방치, 폭력사태를 증폭시키고 있다" 고 비난했다. 서방 국가들은 특히 무가베 대통령이 다음 달 선거를 앞두고 1980년 독립 후 계속돼 온 장기집권이 흔들릴 기미를 보이자 흑인들의 표를 모으기 위해 백인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 아프리카 국가들의 반발〓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은 "이번 분쟁은 전체 인구의 0.6%에 불과한 백인이 경작 가능한 토지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흑인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 이라며 "과거 우리 조상이 강탈당한 땅을 되찾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는 입장이다.

백인농장 무단 점거를 주도하고 있는 독립전쟁 참전 흑인들도 백인 소유 1천여개의 농장을 모두 점거할 때까지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흑인들이 무단 점거한 백인 소유 농장은 5백70여개이며 백인농장주 2명 등 9명이 사망했다.

또 짐바브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모잠비크.나미비아.말라위 등은 지난 21일 회의를 갖고 짐바브웨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 나라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유럽의 식민통치에서는 독립했지만 백인들의 경제 지배가 종식되지 않아 흑백간의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고 주장했다.

한편 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은 다음달 1일 런던에서 주영 짐바브웨 대사를 만나 토지개혁에 필요한 자금 지원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프리카 거주 백인들은 합법적인 토지 구매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강조하며 쉽사리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여서 흑인들의 공격 역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과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에 무력으로 개입할 경우 이에 대한 제3세계 국가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어서 아프리카 대륙은 새로운 국제분쟁의 화약고로 변하고 있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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