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재벌개혁은 현 제도로 가능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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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경기도 포천 일동레이크 골프장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외형적으론 회장단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정부의 연내 재벌개혁 완수.구조조정본부의 계열사 지원 관행 근절방침 등과 관련해 속내는 그전같지 않았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조여오는' 분위기를 의식한 듯 "기업이란 게 뭐냐. 좋은 제품을 만들고 이익을 내고 고용을 창출하고 또 세금을 잘 내면 되는 것 아니냐. 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전략조정과 인력관리를 위해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 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구조조정본부에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분쟁의 소지가 있고 정부가 기업조직까지 구체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 강조했다.

孫부회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2차 재벌개혁에 대해 "현재의 제도적 틀만 잘 운영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며 "앞으로 경영의 투명성과 대외 신인도를 높이지 않는 기업은 자연히 시장에서 퇴출될 것" 이라고 말했다.

골프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오후 6시부터 저녁을 함께 했다.

회장단은 아니지만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 등 주요 회원사 경영진도 참석해 30여명이 모였다.

모 회장은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는 기업을 살려야 한다" 고 말했다.

술기운이 돈 한 참석자는 "재벌이 동네북이 됐다. 국가 경제에 기여한 대기업의 역할은 어디로 가고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재벌을 몰아붙이고 있다" 고 푸념했다.

또다른 참석자는 "재벌이 외환위기를 몰고 왔다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다" 면서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제벌해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마저 보여 재계 내부에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고 말했다.

재벌은 '악' 이고 중소기업은 '선' 이라는 이분법이 자리잡아 원군이 없는 상황이라고 한 참석자는 말했다.

이튿날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이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의 발언내용을 짚고 나오자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고 나섰다.

孫부회장은 "재벌개혁 문제를 놓고 정부와 재계가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좋지 않다" 며 "서로의 입장이 와전된 부분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풀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30대 그룹 지정제도 폐지를 정부에 건의한 것은 현재 경제상황을 반영한 재계의 의견제시였다" 며 "재계의 의견을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 바라보지 말고 바람직한 대안을 찾는 데 서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고 덧붙였다.

김시래.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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