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궁예역 김영철의 카리스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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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연기였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카리스마는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궁예가 최고다. 머리 밀고, 한쪽 눈 가리고, 듬직한 말투까지 너무 멋있다. 게다가 강렬한 눈빛…" (KBS 〈왕건〉홈페이지에 쏟아진 궁예에 대한 평).

KBS1 대하사극〈태조 왕건〉(토.일 밤 9시50분)의 현 주인공은 궁예다.

궁예역을 맡은 김영철(47)의 카리스마와 호연이 8회만에 그 위치를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굳혀놓았기 때문이다.

14일 여의도 KBS 신관 스튜디오에서 녹화중인 김영철을 만났다.

그는 마음으로부터 겸손이 우러나는 표정으로 "그냥 곤혹스럽다" 는 말만 되풀이했다.

"드라마는 연기자 한명의 인기로는 절대 굴러갈 수 없는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 라며 자신을 작품속 한 부분으로만 봐달라고 여러번 주문했다.

" '카리스마' 란 것도 그래요. 제가 뿜어내는 게 아니라 주변 배역들께서 저를 밀어주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죠. "

하지만 궁예는 여러 면에서 왕건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돼있다.

왕가에서 서자로 태어나자마자 궁중암투에 휘말려 한쪽 눈을 잃고 유모의 손에 키워진 뒤 맨손으로 나라를 일으키는 풍운아. 어찌 성주(城主)아버지의 후광아래 무난히 큰 왕건과 비교하겠는가.

"충복이던 왕건에게 배신당하고 백성들에게 죽음을 당하는 비극적 영웅이죠. 하지만 부하들과 동고동락해 그들의 마음을 얻는 탁월한 지도자였던 점에 저는 특히 주목합니다." 연기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저만 잘나서 인기를 얻는 것으로 알았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배우의 인기란 동료들과의 조화, 협동 속에서만 얻어지는 것임을 알게 됐지요. "

극중에서 그가 쓰고 있는 안대가 독특해 보인다.

"원래는 소품실에서 그냥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 줬는데 너무 현대적으로 보여 손수 베로 감쌌지요. 그랬더니 훨씬 고풍스럽더군요."

문제는 한쪽 눈을 가리니까 암기력이 반으로 떨어져 연기가 갑절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참 이상해요. 전같으면 몇 분 안돼 외워지던 대사도 금방 까먹어요. 역시 시력도 두 눈의 협동.조화가 중요하지요. 궁예역은 한마디로 그 철학을 살리는 게 관건입니다." 그는 과연 궁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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