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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나눔 릴레이] 제임스 전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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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강동아트센터 연습실. 전자음이 가득한 스티브 바이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들, 그 사이로 춤추고 있는 비보이들. 서울발레시어터(이하 SBT) 록발레 ‘빙(Being)’의 연습 현장이다. ‘빙’은 무용수가 청바지를 입고 록·힙합·팝음악 등에 맞춰 춤을 춰 1995년 초연 당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바로 제임스 전(52) SBT 상임안무가의 작품이다.

매주 일요일 열리는 ‘홈리스 발레교실’에서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인 제임스 전이 빅이슈 판매원들에게 발레동작을 가르쳐주고 있다. [사진=서울발레시어터 제공]

제임스 전의 작품에는 항상 ‘파격’, ‘재해석’, ‘새로움’ 등의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재능기부에 있어서도 그는 남다르다. 현재 잡지 ‘빅이슈’의 판매원(이하 빅판)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있다. 빅이슈는 홈리스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잡지로, 빅판은 대부분 홈리스들이다.

“발레와 함께 신체운동과 바른 자세를 가르치고 있어요. 유연성은 물론 자신감을 키워주죠. 발레 동작에서 목을 들거나 어깨를 펴는 건 자신감이 없으면 하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제가 일방적으로 나눠주는 게 아니에요. 저 역시 예술적 영감이나 삶의 열정이란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서로가 주고 받는 거죠. 이런 게 진짜 나눔 아닐까요?”

제임스 전과 빅판들은 지난 연말 처음 만났다. GS칼텍스가 발상의 전환을 통한 예술의 사회기여를 보여준다는 취지로 캠페인 홍보영상을 촬영하는 데 참여한 것이 계기였다. 홈리스와 발레가 선뜻 어울려 보이진 않지만 제임스 전의 생각은 달랐다. 홈리스와 발레리노, 이들은 모두 몸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제임스 전의 삶도 1972년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발레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춤이 좋았고, 직접 추고 싶었다.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뉴욕으로 갔고, 82년에는 줄리어드 예술대학 무용과에 입학했다. 당시 학비를 벌기 위해 웨이터 생활도 했는데, 하루 종일 서있어야 했던 그 경험 덕에 빅판의 고충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단다. 84년 유럽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에서 데뷔한 제임스 전은 87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초청으로 국내활동을 시작했다. 95년에는 발레 대중화를 목표로 국내 최초의 민간발레단인 SBT를 창단했다. 현 김인희(48) SBT 단장은 그의 아내다.

그 홍보영상 촬영 후에도 제임스 전은 빅판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거리로 나가 빅이슈 직접를 판매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4월부터는 ‘홈리스 발레교실’을 열었다. 주위에선 “뭐 얻으려는 거냐”며 저의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전은 “내가 좋고 행복해지기 때문에 순수하게 시작한 일”이라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홈리스 발레교실은 경기 과천시민회관에서 매주 일요일 3시간씩 진행된다. 수업에는 강제성이 없다. 빅판들은 날씨나 상황, 기분에 따라 수업에 참여한다. 그래도 평균 10명 이상은 모인다. 수업 초반, 빅판들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도 없었다. 하지만 만남이 계속될 수록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제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웃음도 많아졌다. 연세대 앞에서 빅이슈를 판매하는 김수원(50)씨는 “발레 덕분에 자세도 좋아지고 성격도 차분해진 것 같다”며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제임스 전은 이 홈리스들을 통해 하나의 도전을 꿈꾸고 있다. 올 12월 고양 어울림누리에서 열릴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 이들을 세워보기로 한 것이다.

“발레교실을 계속 진행하려고 보니 목표가 필요했어요. 빅판들은 물론 내 자신에게도요. 1막 파티 장면에 출연시킬 예정이에요. 물론 기본실력은 쌓아야 하겠지만 원한다면 9~10명도 무대에 설 수 있게 해보려고 해요.”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SBT의 ‘호두까기 인형’은 올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 중이어서 의미가 더욱 크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주로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말 그대로 대중이 소액 후원하는 것을 말한다. 창작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프로젝트 계획과 이를 실행하기 위해 후원받고 싶은 목표액을 알리면 대중은 소정의 금액을 기부할 수 있다. 일정기간 동안 정해진 액수만 모금하며, 목표액이 모이지 못하면 펀딩은 무산돼 기부금을 돌려준다.

1000만원을 목표로 한 ‘호두까지 인형’의 크라우드 펀딩은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http://fund.arko.or.kr/fund)에서 진행 중이다. 다음달 12일이 마감이지만, 아직 100만원도 채 모이지 않았다. 이에 빅판들은 “우리가 출연할 공연에 우리도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냐”며 20여명이 5만원을 모아 기부하기도 했다. 격주로 나오는 3000원짜리 빅이슈 한 권 판매에 1600원의 이익을 얻는 게 수입의 전부인 이들로선 큰 돈을 기부한 셈이다.

제임스 전에게 발레는 가장 행복한 일이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다. 기부도 그렇다. 스스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다. 그래서 SBT를 통한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제임스 전은 “예술단체도 사회에 책임이 있는데, 문화는 물론 교육에도 신경 써야 한다”며 “기회를 준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기부를 하면 다양한 기회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제임스 전은 요즘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앞으로 자연스럽게 기회가 온다면 그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양훼영 행복동행 기자

궁금해요 ‘홈리스’가 뭔가요

‘홈리스(homeless)’란 말 그대로 집(home) 없이(-less)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해외에선 보편화된 용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노숙인’ 또는 ‘부랑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노숙인과 홈리스란 말을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견해도 있어요. 경제 활동을 다시 해볼 마음은 있지만 아직 한 곳에 정착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홈리스, 아예 일할 의지조차 잃어버린 사람은 노숙인이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어쨌든 올해 초 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숙인은 1만7815명에 달한다고 해요. 노숙의 원인은 실직이나 사업 실패, 신용불량, 가족해체, 빈곤 등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특히 많이 늘었지요.

 최근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서울역에서 살던 노숙인 300여명의 야간 출입을 제한한 것을 놓고 찬반논란이 뜨겁습니다. 일부 노숙인들이 승객과 주변 상인들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구걸을 하는 등 크고 작은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도 있는 반면, 대안도 없이 노숙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22일에는 노숙인들이 서울역 앞에서 코레일의 출입 제한 결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요.

 사실 정부와 민간에서 노숙인들을 위한 쉼터나 자활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코너는 신한은행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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