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는 당대의 타임캡슐이죠 미학·기술 고스란히 담겼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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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의자의 재발견
김상규 지음, 세미콜론
256쪽, 1만5000원

의자는 서운하겠다. 사람들의 엉덩이에 깔려 지내고, 등을 기대게 해주면서도 고마움을 충분히 인정받지도, 보살핌을 받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해외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인 아이콘’으로 받들어지고 디자인 박물관에 100여 종이 모셔지기도 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아직 이 땅에서는 먼 얘기다.

 이 책, 참신하다. 우리가 무심히 보고, 만지고, 앉았던, 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의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시도로 봐도 좋겠다. 지은이는 서울과학기술대 김상규(공업디자인학과) 교수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내 유명 가구회사에서 의자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한 그는 ‘몸’ ‘기계’ ‘창작’ ‘사회’ 네 개의 범주로 얘기를 풀어나간다. 아르네 야콥슨 등 거장 디자이너도 인용하지만, 시장·포장마차·편의점의 플라스틱 의자까지 거론한다.

① 건축가 찰스 임스의 ‘금속 봉으로 만든 식탁용 의자(DAR)’ ② 덴마크 건축가 아르네 야콥센의 ‘스완 의자’ ③ 미하일 토넷의 ‘토넷 No.14’. 조립과 분해가 가능하다. [세미콜론 제공]


 -의자는 어떤 물건인가.

 “의자는 타임캡슐처럼 당대의 미학과 기술을 응축해 보여준다. 또 형태 자체가 구조인 매우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김상규

 김씨는 “의자를 심각하게 볼 것도 없지만, 많은 사람이 의자를 홀대하는 것이나 고급 의자, 비싼 의자에만 관심을 갖는 것도 안타까웠다”고 했다. 좋은 의자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자는 다리 네 개의 단순한 구조인데.

 “디자이너들은 ‘의자 다리는 네 개’라는 고정관념에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덴마크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아르네 야콥센의 ‘앤트(ant) 체어’(1952)는 의자 다리가 셋 일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아서 결국 다리 네 개를 단 ‘7시리즈’(1955)가 나와 인기를 얻었다. 다리 하나짜리인 에로 사리넨의 ‘튤립의자’가 있는가 하면, 베르너 팬톤의 ‘팬톤 의자’ 등 다리의 개념을 뒤흔든 작품도 있다.”

 김씨는 ‘의자 중의 의자’로 독일의 가구 제작자 미하일 토넷의 ‘No.14’를, 20세기를 대표할 거장으로 찰스·레이 임스 부부를 꼽았다. 토넷 No.14는 조립과 분해가 가능하고, 대량생산되며 합리적인 가격을 구현했다. 임스 부부 또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까지도 실생활에 쓰이는 의자를 디자인했다.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앤트 체어’. 다리가 세 개 달린 대표적인 의자다. [세미콜론 제공]

 -의자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우리가 일상 생활의 물건을 어떻게 보고, 다루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쓰고 버리는 물건이 지나치게 많아졌다. 사물에 대한 관심은 보다 좋은 삶의 환경을 가꾸려는 마음과 맞닿아있다.”

 김씨는 “일상을 풍부하게 사는 게 반드시 비싼 물건을 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렴한 것도 어떤 재료로, 어떤 환경의 근로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 가급적 의자를 멀리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자라도 오래 앉아서 좋을 것이 없고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이상적인 의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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