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한국 생활도자기 빚는 이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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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매일 4시간씩 물레를 돌린다는 도예가의 손은 크진 않았지만 마디가 굵었고 따뜻했다. 인터뷰 중 그는 두손을 모았다. “1+1=1이다. 하나 옆에 하나가 놓여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 하나 하나가 모여 군중이 된다.” 그래서 그는 미술관 전시 때마다 수백개의 도자기를 전시장 바닥에 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는 장인이다.” 누구나 예술가라고 하는 요즘 재독(在獨) 도예가 이영재(60)는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는 ‘쓰임’이라고 표명한다. 그러나 쓰임을 강조한 생활자기는 독일 성당의 미사용 성배(聖杯)가 됐고, 유럽 유수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예술품이 됐다. 예술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는 그의 사발은 바우하우스(Bauhaus)의 미감과 다산(茶山) 정약용의 실학(實學) 사상이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6년과 2008년 독일 뮌헨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Pinakothek der Moderne)에서 도예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초대전을 열어 오늘날의 생활 자기를 새로운 예술적 관점에서 보여줬다. 현재 베를린 동양미술관에서 ‘313개의 그릇’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고 있다. 11월 부산 전시 준비차 한국에 온 그를 만났다.

 -당신 도자기의 특징은?

 “첫눈에 반해 버리는 게 아니라 쓰다보니 좋아하게 되는 도자기.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은 쓰임에 있다. 일본이나 중국 것이 장식성을 추구한 데 비해 우리 도자기는 군더더기를 만들지 않았다.”

 -쓰임을 강조하는데, 당신은 예술가인가 장인인가.

 “화랑에 걸린 그림은 무엇을 위한 예술이냐. 예술 이론을 성립시키기 위한 예술이냐, 인간을 위한 예술이냐. 화랑에 걸린 이상 미술시장에 나온 것 아닌가. 그건 작품인가, 제품인가. 나는 장인이다. 내가 만드는 것은 생활용품이다. 잘 쓰이기 때문에 작품이 될 수 있는 거다.”

2006년 뮌헨 피나코텍 모데르네에서의 전시 때 이영재는 전시장 바닥에 111개의 사발을, 미술관 앞 광장에 1111개의 사발을 흩어 놓았다.

 - 그 생활용품이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이 되고, 미사용 성배가 됐는데.

 “종교 또한 인간을 위한 거다. 하느님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근본을 찾다 보니 쓰임도, 예술도, 종교도 서로 통하게 됐다.”

 2000년 그의 사발을 알아본 독일 쾰른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용 성배 제작을 의뢰했다. “금잔, 은잔은 예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진 그곳 신부의 요청에서였다. 그 역시 금이나 은에서 흙으로 재료만 바꿨을 뿐 굽 있는 높은 잔을 만들 수는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갈하게 몸 단장한 뒤 정한수 올리고 기도하던 우리 할머니들의 사발을 만들겠다. 그것만큼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하는 것이 없다”고 제안했다.

 -당신 사발에 독일과 한국 두 가지가 다 들어 있다면, 그건 어떤 걸까?

 “내가 운영하는 도자 공방 ‘마르가르텐회에(Margartenhhe)’는 1928년 공장 지대 노동자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려 건립된 곳이다. ‘기능이 완전한 것, 생활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단순한 형태가 아름답다’는 바우하우스의 철학을 계승하는 곳이다. 이것은 다산 정약용의 실학 사상과도 상통한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영재=1951년 서울생. 72년 수도여대(현 세종대) 생활미술과 졸업 후 도예를 배우러 독일로 유학. 78년 비스바덴 미술대학 졸업, 카셀 미술대 연구교수(84∼87년), 87년부터 에센의 도자 공방 ‘마르가르텐회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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