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정국 미로 헤쳐나갈 열쇠 찾은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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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45년 광복 직후 미 군정의 허둥대는 모습과 남한의 혼란상이 묻어나는 증언이다. 해방정국의 미로(迷路)를 헤쳐 나갈 열쇠를 찾은 느낌이다. 하지 중장의 1만 대군이 인천에 들어올 때 한국말을 아는 미군은 한 명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한국말을 아는 윌리엄스와 하지의 만남도 그야말로 우연이었음이 드러났다. 그것도 하지가 인천에 상륙하던 9월 8일에….”

 미 군정 책임자 존 하지(1893~1963)의 보좌관 조지 윌리엄스(1907∼94) 해군 중령의 ‘해방 공간’ 증언을 공개(본지 8월 15일자 8면)한 김용호(59·사진) 인하대 교수의 말이다. 한국현대사 전문가 이정식(80)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좌교수가 윌리엄스와 1988년 인터뷰한 기록을 이 교수 제자인 김 교수가 최근 찾아내 번역·재구성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해군 군의관이 육군 중장의 보좌관이 된 게 흥미롭다.

 “미 군정이 얼마나 준비가 부족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는 일본인 2세 미군을 여럿 데리고 왔으나 한국에서 태어나 14세까지 자란 윌리엄스와 비교가 안 됐을 것이다.”

 - 윌리엄스가 ‘애치슨 미 국무차관이 이승만 박사를 싫어해 귀국을 막았다’고 했는데.

 “특히 주목되는 부분이다. 한국 관련 애치슨의 역할이 매우 컸음을 확인하게 한다. 애치슨은 한반도 38선을 획정하는 데도 깊이 개입했다.”

 - 윌리엄스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도 있는 듯하다.

 “6·25전쟁의 원인을 애매모호하게 서술해 온 브루스 커밍스(미 시카고대 교수)처럼 미국이 제국주의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미 군정기를 보면 윌리엄스 같은 사람은 ‘제국주의 앞잡이’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윌리엄스는 미 군정기에 한국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았음을 증언한다. 하지의 상관인 맥아더 장군은 한국에 관심이 없고 미 국무부는 소련에 대해 안일한 태도를 보인 상황에서 윌리엄스가 한국 현실을 제대로 알리려 한 점은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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