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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귀족·평민 공존하는 모차르트가 가장 좋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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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손열음(25·사진)씨. 그에겐 또 다른 직함이 있다. 중앙SUNDAY 최연소 칼럼니스트다. 6년째 독일 유학 중인 스물다섯의 이 ‘음악 천재’는 모국어를 잃어버리긴커녕 빼어난 인문학적 교양과 글솜씨로 지난해 5월부터 1년 넘게 중앙SUNDAY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 교수는 손씨에 대해 “그를 보면 천재라는 게 있다는 걸 느낀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음악적 재능과 글재주를 동시에 갖춘 천재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비결이 뭘까. 손씨는 “사실 저는 활자 중독자”라고 고백했다. 글자가 너무 좋아 세 살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길을 걷다가도 모르는 영어 단어를 보면 바로 사전을 찾아볼 정도라는 것이다. 손씨는 인터뷰 당일인 지난 8일 오후, 덜렁 여행가방 하나를 끌고 중앙일보에 찾아왔다. 원주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까르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피아니스트는 손이 길어야 하나.
“저는 손가락 끝이 뭉툭한 편이에요. 피아노를 많이 쳐서 그런 건 아니고요. 원래 그랬어요. 제 키가 1m63㎝인데 손뿐 아니라 사실은 발도 커요. 악력도 센 편인데 몸이 유연한 것 같아요. 강원도에서 많이 뛰어놀고 옥수수를 많이 먹어 그런가 봐요.(웃음)”

-언제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나.
“1990년 1월부터니까 세 살 반? 동네 상가 1층에 있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요.”

-음악적 재능을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건가.
“엄마가 노래를 잘하세요. 교회 합창단 지휘도 하시는데 국어선생님이세요. 그래선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어요. 서너 살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주로 어떤 책을 읽었나.
“고전이나 외국 소설이죠. 한국 역사나 조선시대 문학, 역사·과학 책을 즐겨 읽었고요. 읽는 것 자체를 좋아했어요. 뭐라도 읽어야 직성이 풀려요. 비행기에서 책이 없으면 잡지 광고라도 읽거든요. 전 글자 자체가 좋아요. 그래서 어릴 땐 동화책이나 학교 교과서를 베껴 쓰면서 놀았어요.”

-스스로도 천재라고 생각하나.
“에이, 안 그래요. 한데 제가 남보다 절대음감이 있고 또 악보를 빨리 읽는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언제 알게 됐나.
“대학(한예종)에 가서요. 그 전엔 주변에 음악 하는 애들이 없어서 비교 대상이 없었죠. 남들도 다 나 같은 줄 알았어요.”

-악보를 보며 바로 연주를 한다는 얘긴가.
“대부분의 곡은 그렇죠. 음악을 들어보지 않아도 악보만 보고 연주할 수 있는데 슈베르트와 슈만 정도까지는 그래요. 물론 더 어려운 곡들은 연습을 해야 하죠. 악보를 보거나 음을 외우는 데 시간이 별로 안 걸렸어요.”

-비슷한 수준의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
“한예종 동기 중에 작곡가 언니가 있는데 저보다 청음이 좋거나 비슷할 거예요. 2007년 독일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는 오케스트라 스코어 리딩을 하더라고요. 오케스트라 전체 악보는 표기법이 다 달라서 배우지 않으면 읽지 못하는데 한 번에 악보를 보는 것을 봤어요. 청감이 무척 좋다고 생각했어요.”

-고교 과정을 건너뛰고 대학에 간 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한예종 교수인 김대진 선생님을 처음 뵀어요. 베토벤 소나타, 쇼팽 에튀드 등을 15분쯤 치니까 선생님께서 ‘무조건 너를 가르치겠다’고 하셨죠. 그때 우리 집 사정이 좀 어려웠었는데 선생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김 선생님한테 개인교습을 받다가 다음해 3월 서초동에 있는 한예종 예비학교를 들어갔어요. 원주여중 다니면서 매주 토요일 서울로 와 선생님께 3년간 지도를 받았어요. 여중 졸업 뒤 곧바로 한예종으로 간 거죠.”

-어릴 때부터 혼자 산 셈인데.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서 혼자 살았죠. 밥도 혼자 사 먹고. 어릴 때는 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2002년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도 혼자 갔으니까요. 사실은 97년 초등학교 5학년 때도 영(young)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혼자 갔어요. 서울에서 보스턴으로 가 비행기 갈아타고 페테르부르크까지 갔어요.”

-5학년이면 한창 어리광 부릴 나이 아닌가.
“그때 키가 지금이랑 비슷했어요. ‘혼자 가면 되지 뭐’ 하고 편하게 생각했어요. 그 콩쿠르에선 2등을 했어요. 모차르트 콘체르토 21번이 결선 곡이었죠. 중학교 때도 외국에 나가면 언어가 잘 안 돼 답답했지만 두려움은 없었어요.”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좋아하는 것에는 그래요. 한데 싫은 건 나 몰라라 해요. 산수나 수학은 완전 관심 없어요. 초교 1학년 때는 다들 산수 100점 맞는데 전 80점 맞았어요. 숫자 세려고 손가락, 발가락까지 동원했으니까요. 한데 국어는 항상 잘했어요. 지금은 전화번호를 잘 외우고요.”

-IQ 테스트를 해 봤나.
“초등학교 1학년 때 했을 땐 152라고 하더라고요. 나이가 든 다음 본 시험에는 교과과정이 포함되고 숫자가 나왔는데 점수가 많이 내려갔어요.”

-피아노 연습은 어떻게 한 건가.
“어릴 때 악보 보는 걸 좋아해서 이 책 저 책 펼쳐놓고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피아노로 치다, 말다 했어요. 그러면 엄마가 중간에 끊지 말고 반드시 끝까지 치게 했어요. 어릴 때는 저도 테크닉 위주로 연습했죠. 그 덕에 기본기가 튼튼해졌어요. 저는 악보를 보면서 어떻게 칠까 하는 구상·설계를 하는 연습을 많이 해요. 피아노를 치다가 어느 순간 머리가 딱 멈추죠. ‘아, 이제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그만해요. 보통 하루 5∼6시간 정도. 한예종 다닐 때는 몇 주씩 피아노를 안 칠 때도 있었죠. 연습을 오래 하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연주회를 했나. 무대에 서면 안 떨리나.
“첫 독주회는 6살 때 원주에서 했는데 말도 안 되게 쳤던 걸로 기억해요. 대학 들어간 뒤엔 한 달에 적게는 2~3회, 많으면 6~7회 했고요. 저는 항상 바로 전에 했던 연주가 가장 많이 생각나요. 매번 최선을 다하죠. 무대에서 거의 안 떠는데 독일에 가서 본격적으로 연습을 하면서 떠는 게 뭔지 알게 됐어요. 연습을 많이 하면 내가 연습한 대로 곡이 안 나올까 봐 떨리더라고요. 서울에서는 사람들의 기대치 때문에 좀 떨려요. 특히 예술의전당에서 할 때 더 떨려요. 거기가 집 같은 곳이고 다들 아는 사람들이어서 기대치가 높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외국서 혼자 공부하고 연주하는 생활이 외롭지 않나.
“많이 외로운데 그냥 버텨요. 어떤 때는 외로운 감정도 잘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죠. 특히 미국에선 연주 전까지는 공항까지 나와서 모시고 다니다가 연주가 끝나면 호텔 셔틀버스 타고 공항에 가래요. 내가 상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래도 사람은 어차피 혼자 아닌가요.”

-독일 하노버국립음대에는 왜 가게 됐나.
“김대진 선생님이 권유하셨어요. 선생님이 추천한 음악 코스에 가보니까 여기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딱 들더군요. 거기 선생님들은 음악에 대해 기술적인 게 아니라 추상적인 얘길 많이 해요. 그 작곡가가 살던 시대가 어땠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땠다는 등 가치관, 철학을 가르쳐요. 그래서 마음이 바쁜 애들은 싫어하죠.”

-학비는 어느 정도 되나.
“한 학기에 250유로쯤 내는데 거의 공짜죠. 저는 ‘솔로 클래스’에 다니는데 일반 대학의 박사과정과 비슷해요. 선생님 한 분의 클래스에 학생이 10명쯤 되고요. 잘하는 애들도 많고, 선생님도 좋아요. 저는 ‘아리에 바르디’라는 70대 이스라엘 선생님한테 배워요. 젊었을 때 연주자로 유명했다고 들었어요.”

-하노버 국립음대에 한국인이 많나.
“지금은 재학생의 절반쯤 돼요. 예전에 ‘줄리아드 음대’의 명성이 옮겨온 것 같아요. 여기서 3년쯤 더 배우고 싶어요. 예술 하기에 독일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한국과 뭐가 다른가.
“집중하는 데 좋아요. 한국은 분위기가 산만한데 다들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독일 사람들은 우리처럼 바쁘지 않아요. 미국처럼 완전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라는 느낌을 받아요.”

-피아노를 안 했다면 뭘 했을 것 같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세 번 정도 더 태어나더라도 다시 음악을 할 것 같아요. 다섯 번 더 태어난다면 한 번쯤 다른 일을 해보고 싶겠지만….”

-음악을 하는 특별한 목표가 있나.
“그런 게 없는 게 제 인생관인 것 같아요. 강박관념이 없어요. 예전 선배님들은 한국을 알려야겠다, 혹은 성공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요즘 친구들은 그냥 음악과 무대가 좋아서 활동해요. 저도 어릴 때는 성공하고 싶다, 집안을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젠 달라요. 잘하면 좋지만 꼭 무조건 잘해야 하느냐는 생각도 들어요. 못하는 것에도 나름의 미학이 있어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기보다 소수일망정 저처럼 클래식 음악을 다루고 공연하는 사람들, 취향이 닿는 매니어들이 오랫동안 좋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피아노 연주 외에는 하고 싶은 일이 없나.
“식당을 하고 싶어요. 음악회 할 수 있는 식당. 홀은 너무 진지해서 싫고, 식당이 친근해서 좋아요. 사실 디테일한 사업계획서가 제 머릿속에 다 있어요. 요즘 한국에 재즈 바는 많은데 클래식은 잘 안 되잖아요. 제 목표는 서른 살에 그런 식당을 여는 것이에요. 직업 연주가는 계속하되, 이건 완전히 별개로 하고 싶어요. 그런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게 걱정이죠.”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군가.
“모차르트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특수성도 많고 완벽해서 좋아요. 모차르트에게는 양 극단이 항상 같이 있어요. 그의 곡에는 진보와 보수, 평민과 귀족 등 모든 극단이 다 포함돼 있다는 게 느껴져요.”

정리=김기태 인턴기자(경희대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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