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이 바이다'에게 경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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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올해 오스카상에서 그다지 주목되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역설을 담고 있는 사건은 폴란드의 영화 감독 '안제이 바이다'에게 수여된 평생공로상(an honorary Oscar for a lifetime of artistic endeavor)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안제이 바이다가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감독이 아니라는 점이나 동구권 감독에게 처음으로 이 상이 수여됐다는 것을 단순하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자면 안제이 바이다는 오스카상과 몇 번의 인연을 맺을 뻔했었다. 하지만 매번 결과는 불우한 것이었다. 그는 이미 1975년에 〈약속의 대지〉로 그리고 1979년에 〈빌코의 여인들〉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에 선정된 적이 있었고, 게다가 세계를 뒤흔든 폴란드의 18일을 다룬 〈철의 사나이〉가 1981년 칸느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을 때 그는 다시 한번 오스카상을 수여할 좋은 기회를 얻었었다. 하지만 그 당시 폴란드에 내려진 계엄령 때문에 그는 폴란드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지 못했고, 그만큼 그의 영화는 수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평생공로상이 무언가 과거의 업적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할리우드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시작하면서 동구사회주의 국가의 엄혹한 정치적 검열과 싸워가면서 진정한 인간의 삶과 자유를 고민했던 한 감독의 영화 인생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바이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단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에게 검열은 구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이후에도 여전히 존속했었기 때문이다.

1989년 폴란드 구사회주의 정권의 붕괴와 자유로운 90년대의 폴란드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안제이 바이다를 더 불운하게 만들었다. 90년대 그는 그간 숨겨져 왔던 폴란드의 문화를 재발견하는 영화들을 만들어낸다. 나치로 인해 죽어간 폴란드 유대인을 다룬 〈코작〉과 1943년 바르샤바의 유테인 게토에서의 폭동에 대한 폴란드인의 태도를 다룬 〈부활절 주간〉이라는 영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는 할리우드 오락 영화와의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폴란드인들은 할리우드 영화에 몰두했고, 바이다는 이런 상황에서 영화만들기를 포기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까지 했었다.

9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바이다는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정치적인 감독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폴란드에서의 상황이 전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관객은 더 이상 정치적인 주제와 관심을 갖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폴란드의 영화 문화가 바뀌었고, 이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공산당이 아니라 할리우드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언젠가 '정치적 검열을 피하는 방법은 있지만, 돈의 검열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년 12월 그는 폴란드의 또 다른 감독인 크쥐스토프 자누시와 함께 프랑스의 외무부 각료였던 자크 랑에게 유럽 연합이 폴란드의 영화를 지원해줄 것을 호소했다. 폴란드의 영화시장은 90년대에 들어서 미국에 의해 잠식당하고 심지어 어떤 해에는 미국 영화에 의해 무려 94%의 시장 잠식이 있었다. 바이다는 '더 이상 폴란드 극장에서 미국 영화의 비율이 증가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라고 탄식했었다. 그는 만약 폴란드에서 1년에 20편 이하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폴란드의 영화 산업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를 상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바이다의 탄식은 작년 폴란드에서 거둔 그의 성공을 고려한다면 다소 역설적인 것이다. 그는 3백만 달러를 들여 역사 드라마인 〈Pan Tadeusz〉를 만들었고, 이 영화는 6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타이타닉〉의 흥행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폴란드의 또 다른 감독인 제지 호프만의 영화 〈불과 검〉이 거둔 성공을 합하면 작년 한해 폴란드 영화는 시장점유율에서 40%를 넘어서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프랑스의 한 신문은 작년 말 폴란드 영화감독들의 유럽 연합에 대한 영화 지원 호소와 폴란드 자국에서의 영화 성공을 '폴란드 영화가 할리우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다루었다. 물론 폴란드의 영화가 할리우드와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미국 영화 자체에 대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다는 '우리는 미국 영화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영화가 우리에게 부과하고 있는 방식에 대항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폴란드의 영화를 위한 자리를 허용하지 않는 미국의 제작/배급 방식에 대항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할리우드에서 바이다가 오스카상을 받은 것은 확실히 역설적인 것으로 보인다. 바이다는 평생공로상을 받으면서 '나는 오스카를 마치 그레타 가르보, 오슨 웰즈가 받았던 것처럼 내가 이미 모든 것을 했고 이제 쉬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위로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이 상은 은퇴를 기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이 상은 그에게 있어서는 폴란드의 영화를 위한 또 다른 미래를 선언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바이다에게 오스카와는 또 다른 경의를 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필자 김성욱씨는,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석사 졸업하고〈문화학교 서울〉연구소장을 거쳐,현재 공주 영상정보대 출강.〈필름 컬처〉등의 잡지에 정기적으로 영화와 관련한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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