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IE] 땅에 떨어진 빗물은 무해한 중성 … 건물에 저장소 두면 침수 피해도 줄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올여름 잦은 폭우로 서울이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는 등 비 피해가 잇따랐다. 도심 한복판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도 일어났다. 매년 여름마다 홍수 피해를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로 알려져 있어 아이러니다. 서울대 한무영(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빗물을 활용하면 비 피해와 물 부족 사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혀 이목을 끈다. 그의 주장은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교과서에 나온 빗물 활용법을 신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빗물에 대한 오해 등도 짚어본다.

 중2-1 국어 교과서(미래엔) Ⅱ. 글의 특성과 짜임_(1) 지구를 살리는 빗물

‘빗물 예찬론자’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의 ‘지구를 살리는 빗물’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는 ‘산성비가 토양을 산성화해 미생물들을 죽이고 식물의 생장에 피해를 준다’고 쓰여 있다. 실제 사례도 등장한다. 산성비가 내리면 호숫물의 산성도가 높아지는데,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금속 성분이 산성을 띤 호숫물과 반응하면 독성이 생겨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다는 설명이다. 그와 관련된 사진도 함께 실렸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55) 교수는 ‘빗물 예찬론자’다. 그는 교과서에 실린 산성비 관련 내용을 ‘괴담’이라고 잘라 말한다. 깨끗한 대기 상태에서 내리는 비도 원래 산성을 띠며 빗물이 땅에 떨어지면 곧바로 중성이나 알칼리성으로 변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물이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서울대 공과대학 지하에 빗물저장소를 만들어 두고 빗물을 받아 식수로 쓰고 있다.

김동욱(오른쪽)군이 빗물의 pH 농도가 중성임을 확인하더니 “산성비라는 말이 잘못된 것 같다”며 신기해 했다. [김경록 기자]

한 교수를 만난 건 이달 1일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줄기차게 쏟아진 장대비로 서울 도심지 곳곳이 물난리를 겪은 직후였다. 이날 취재에 동행한 김동욱(서울 월촌중 2)군은 “이번 폭우가 너무 심하고, 우리나라 기후도 아열대로 바뀐다고 해 빗물 처리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서울대 공과대학 지하에 있는 빗물저장소로 김군을 안내했다. “이곳의 원리는 간단해.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면 홈통을 타고 하수도로 쓸려가잖아. 나는 홈통을 필터와 연결했어. 낙엽이나 담배 꽁초, 모래 같은 것들만 간단하게 걸러서 빗물을 저장 탱크에 모으는 원리지.” 그가 빗물저장소 바닥에 있는 맨홀 뚜껑을 열자 이번 폭우 때 받은 빗물이 가득 차 있었다.

한 교수는 비커에 빗물을 한 가득 뜨더니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라며 맛있게 마셨다. 김군도 “마셔보고 싶다”며 한 교수에게 비커를 받아들고 물맛을 봤다. “어, 생각보다 맛있네요. 비 냄새가 조금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고…. 살아있는 물맛인 것 같아요.” 김군의 말에 한 교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당연하지. 이 물의 유통 경로를 좀 봐. 하늘에서 떨어진 걸 필터로 정수만 해서 바로 마신 거야. 그야말로 순수한 자연의 맛”이라고 설명했다.

 빗물이 그렇게 깨끗하다면 교과서에서 지적한 산성비의 위험성은 어떻게 된 걸까. 김군은 “산성비가 정말 위험한지 여부도 실험해보면 정확히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한 교수는 “1분도 채 안 걸리는 실험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힐 수 있다”며 pH측정지와 pH 측정 장치를 가져왔다. 김군에게 빗물이 담긴 비커를 건네며 “pH측정지를 집어넣어 보라”고 말했다. pH측정지는 pH 농도에 따라 11단계로 색깔이 변해 비교적 정확한 농도를 파악할 수 있다. 종이로 빗물을 휘휘 저어보던 김군은 “색깔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며 의아해했다.

 한 교수는 빗물이 지표면에 떨어져 중성이나 약알칼리성으로 변하는 이유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해줬다. “과학에는 ‘전하 균형’이라는 개념이 있어. 모든 물체에 음이온과 양이온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야. 대기 중에 떠 있는 SO2나 CO2는 모두 음이온이거든. 전하 균형이 되려면 수소 이온이 많아져야 해. 수소 이온이 많다는 건 산성이라는 의미야. 그러니 대기 중에 있는 빗물은 자연스럽게 산성을 띠게 되지. 그러다가 지표면에 내려오면 먼지에 있는 칼슘·마그네슘 등 양이온과 합쳐지면서 중화가 되는 거야.” 비커 속의 빗물에 pH 측정 장치를 담그자 6.75이라는 숫자가 떴다. 김군은 “pH가 7이면 중성인데 빗물이 중성이라는 말이 진짜였다”며 놀라워했다.

건축 단계부터 빗물저장소 만든 아파트도 있어

김군은 “집집마다 빗물을 저장하는 것이 이번처럼 심한 폭우 피해에 대한 대책이 될까”라며 궁금해했다. 가정에서 모을 수 있는 양이 많지 않아 대책으로는 미흡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 교수는 “집집마다 받는 것도 좋지만, 아파트 같이 큰 건물을 지을 때 설계 단계부터 빗물저장소를 만들면 훨씬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건축 단계부터 빗물저장소를 만든 대형 아파트도 소개해줬다.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 지하 4층에 만들어둔 빗물저장소에는 3000t의 빗물이 항상 차 있다. 이번 폭우에도 스타시티의 빗물저장소로 1000t의 빗물이 흘러들어갔다. 한 교수는 “그곳이 상습 침수 지역이었는데 빗물저장소가 생긴 뒤부터 침수 피해에서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이를 “빗물저장소가 곧 나무 한 그루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가 오면 빗물을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사용한 만큼 내보내는 저장소의 역할을 숲 속의 나무들이 뿌리에 빗물을 저장해두고 가뭄 때 물을 내보내는 원리에 빗대 설명한 것이다. “건물이 들어서면 그만큼 자연은 파괴되죠. 이 말은 건물이 들어서기 전 땅이 갖고 있던 물 저장력을 잃는다는 의미예요. 건물이 빗물저장소를 갖추고 땅이 원래 저장하고 있던 물의 양만 그대로 유지하면 자연 재해도 그만큼 줄어들 겁니다.”

 김군은 “빗물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비가 오면 ‘물이 빨리 빠져야 할 텐데’라는 걱정만 했어요. 앞으로는 제가 곧 자연이자 나무라는 생각으로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얘기했다.

박형수 기자
김경록 기자

중앙일보 기사로 더 생각해 보세요

1년 내내 기상이변 … 피해 줄이려면

지구촌이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름엔 폭우, 겨울엔 폭설이 반복되고, 해마다 폭염과 한파가 기승을 부린다. 1년 내내 기상이변인 셈이다. 기상이변의 원인은 다섯 가지로 간추려진다. ‘북극 진동’ ‘엘니뇨’ ‘제트기류’ ‘북태평양 고기압’ ‘라니냐’가 그것이다. 기상이변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물 쇼크’다. 유엔은 2025년이면 세계 인구 중 30억 명 이상이 식수난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고 있어 상황이 더 심각하다. 국가 차원의 수자원 관리 시스템부터 가다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계기사

2011년 7월 28일자 3면장마 상식 파괴 … “종료 선언” 뒤 1년 올 비 34% 쏟아졌다
2011년 7월 28일자 20면104년 만의 폭우 … 이제는 재해 복구다
2011년 7월 15일자 6면22일간 719㎜ 물폭탄 신기록
2011년 4월 20일자 E8면이대로 가면 14년 뒤 30억 명이 ‘물 쇼크’
2010년 12월 27일자 22면25㎝ 눈폭탄→259㎜ 폭우→30년 만의 한파 … 1년 내내 기상이변
2009년 3월 21일자 34면물 부족 이대로 가다간 큰 재앙 된다

물 복지국가 건설하려면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물 관리법도 역사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오늘날 상하수도 방식의 물 관리는 고대 로마의 수도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이 수도 건설에 정성을 쏟은 이유는 안정적인 물공급이야말로 훌륭한 문명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엄청난 문명을 이룩하고도 물 관리에서 실패해 하루아침에 몰락한 곳도 있다. 고대 마야문명은 기원전 2600년 이후 무려 3000여 년 동안 훌륭한 도시 기반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그런 마야의 ‘돌연사’에 대해 물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 관리를 과학이 아닌 미신적인 방법에 의존한 탓이라는 것이다.

관계기사

2011년 3월 22일자 E8면‘물 복지국가’ 건설한 로마의 지혜
2011년 1월 29일자 21면물 부족으로 멸망한 마야, 현대 문명도 웃을 일 아니다
2010년 1월 14일자 23면 ‘킬링필드’ 적시는 생명의 우물
2009년 9월 9일자 47면물의 재앙

이번 주 주제와 관련된 NIE 활동 이렇게

1. ‘빗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자유롭게 적어본 뒤,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로 구분해본다.

 예> 빗물=산성비, 나뭇잎, 폭풍, 재해, 요정, 끈적끈적함, 무지개 ….

  긍정적 이미지: 나뭇잎, 요정, 무지개

  부정적 이미지: 산성비, 폭풍, 재해, 끈적끈적함

2. 우리 집에 빗물저장소를 만들어 빗물로 식수 등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하고, 어떤 시설이나 노력이 필요한지 가족회의를 거쳐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해본다.

예> 가정에서 빗물 저장소 만들어 사용하기

①문제점: 우리 집은 아파트라 빗물을 받을 장소가 마땅치 않다. / 빗물이 부패하지 않게 오랫동안 보관하기가 쉽지 않다. / 받아둔 빗물을 사용하기가 번거롭고 불편하다.

②해결 방법: 베란다에 커다란 항아리를 꺼내놓고 빗물을 받으면 빗물 저장소로 사용할 수 있다. / 받아둔 빗물에서 식수용만 따로 분리해 냉장고에 보관하고 나머지 물은 청소용이나 씻는 용도로 그때그때 사용한다. /수돗물을 쓰기까지 사용되는 에너지 등을 생각해 약간의 불편은 감수하기로 한다. 빗물을 음용수로 사용한 후 사먹는 생수 값을 아껴 불편을 감수한 가족들에게 용돈을 준다.

3. ‘집집마다 빗물을 모아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여보자. 아래 기사를 참고해 빗물에 대한 오해를 없애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캠페인 송도 작사해보고, 이 노래를 어떤 가수가 부르면 좋을지도 정해본다.

경기도 수원시가 도시 전체의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재활용한다. 이른바 ‘레인시티(Rain-City·빗물활용도시)’ 사업이다. 내리는 비를 그냥 하수도로 흘려보내지 않고 빗물 저장시설에 모아뒀다가 각 가정이나 공공시설에서 조경·화장실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모든 빗물을 재활용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레인시티 사업을 통해 10년 뒤에는 하루 1만2000t, 연간 439만8000t의 빗물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수돗물 값(t당 평균 970원)으로 환산하면 하루 1160원, 연간 42억6000만원을 절약하는 셈이다.

한반도 기온은 지난 99년간 섭씨 1.8도 올랐다. 여름은 19일 길어졌고, 겨울은 17일 짧아졌다. 연중 가장 많은 비가 오는 달이 7월에서 8월로 바뀌고 있고, 장마 종료 뒤 ‘물폭탄’을 쏟아붓는 ‘장마’가 또 오기도 한다.

한반도의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며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과거 같으면 ‘기상이변’으로 불릴 만한 이런 현상들이 ‘일상’이 되고 있다. 이렇게 달라진 한반도의 기후에 맞춰 서울 등 도심의 치수·방재 대책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려대 김중훈(건축사회환경공학) 교수는 “강수량이 많아져 과거에는 안전했던 치수시설로는 더 이상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