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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72) 경북 영천 성일가(星一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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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적송 숲을 배경으로 한 경북 영천 괴연동의 성일가(星一家)는 전통 한옥 양식을 좇아 금강송으로 지었다. 담장을 없애고 내부를 현대식으로 해 생활의 편리를 도모했다. [중앙포토]


내 평생 은인이 10명 정도 된다. 첫 은인이라면 신필름의 신상옥(1926~2006) 감독이다. 가장 최근의 은인은 (주)전홍의 박정하 회장이다. 그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경북 영천에 성일가(星一家)를 지었다.

 2008년 내가 건립한 성일가는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갖춘 전통 한옥이다. 동쪽으론 애향산, 서쪽으론 채약산, 남동쪽으론 금오산에 둘러싸여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한옥 뒤로는 풍모가 뛰어난 적송이 숲을 이루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처음 와보는 사람들의 첫 마디는 대체로 이렇다.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어쩌면 이렇게 포근하게 앉아있느냐”고.

 옛 양반들의 한옥이 모인 반촌(班村)은 자기 방어적 성향이 강한 탓에 담을 튼튼하게 쌓았고, 그로 인해 이웃 간의 교분이 사실상 단절된 측면이 있었다. 성일가는 아예 담장이 없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기가 빠져나간다면서 담을 쌓으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방을 탁 터놓아도 사소한 물건 하나 집어가는 사람 없다.

 대구 인교동 253번지 한옥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적부터 한옥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외할머니 댁이었던 그 곳은 대구 유일의 반촌이었다. 젊은 시절엔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 창덕궁 비원 등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촬영 관계로 자주 접했다. 1978년 영화 ‘세종대왕’에선 창덕궁 선정전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어좌에 앉아 왕 역할을 했다. 지금으로선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2007년 영천에 포도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지금의 성일가 터를 발견하게 됐다. 퇴계의 16대손이자 이창동 감독의 형인 이필동은 내가 땅을 사니까 한옥을 지으라고 권했다. 성일가 터 뒤의 적송 숲이 나를 매료시켰다. 나는 해송도 좋아한다. 해풍을 받은 솔잎이 내뿜는 이온은 살균 작용을 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곳이 송정리 바닷가다. 촬영 틈에 찾은 경포대 해변길은 소나무가 빽빽했다. 그 곳에서 아침 시간 약 2.5㎞ 내외의 소나무 길을 뛰면 머리가 그렇게 맑아질 수 없다.

 성일가는 외관상으론 전통 한옥을 따르면서도 내부적으론 생활이 편리하도록 설계했다. 한옥의 상징인 팔작지붕(공작새가 날개를 편 듯한 모양의 지붕), 고령에서 주문 제작한 청기와 등이 성일가의 자랑거리다. ‘대목’이라 불리는 삼척 한국전통가옥학교 이진섭 교수가 오대산 월정사 부근의 금강송으로 집을 지었다. 이 집엔 직경 35㎝의 원기둥이 36개 들어갔다.

 전원 속 한옥 생활을 부러워하는 분이 많지만 일상 생활로 들어가면 어려움이 많다. 시골에 살면 매일 벌레와의 전쟁이다. 성일가도 질 좋은 금강송을 썼지만 나무 속에 살던 애벌레들이 밖으로 기어나온다. 무공해 채소를 길러 먹는 것도 쉽지 않다. 농약을 안 친 채소와 과일은 거의 벌레에게 먹혀 버린다. 모두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성일가에선 훌륭한 클래식 음악을 원하는 만큼 크게 틀어놓고 즐길 수 있다. 이 집을 방문한 가수 패티 김은 “좋은 음악을 하이 볼륨으로 들어보니 너무 행복하다. 낙원이 따로 없다”고 소감을 남겼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느 한옥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성일가의 참매력이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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