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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소프트 기술 악착같이 배워라” … 애플 추격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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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에서 둘째)이 29일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를 둘러본 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며 담소하고 있다.


이건희(69) 삼성전자 회장은 29일 “5년, 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소프트 기술, S급(최우수) 인재, 특허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에서 열린 ‘2011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에서다.

 이 회장은 약 2시간 동안 전시장을 돌며 삼성전자와 외국 경쟁사들의 제품들을 일일이 비교하고 몇몇은 사용까지 해본 뒤 그룹 사장단에게 “소프트 기술을 확보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소프트웨어·디자인·서비스 같은 소프트 기술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며 “필요한 기술은 악착같이 배워서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열과 성을 다해 소프트웨어 인력을 뽑고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시에 하드웨어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부품 수를 줄이고, 가볍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 등 하드웨어도 경쟁사보다 앞선 제품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고 했다. 삼성전자의 강점인 하드웨어 기술을 계속 살려나가되, 경쟁 업체에 비해 뒤진 소프트 기술을 보완해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이다.

 S급 인재에 대해서는 “사장들이 인재를 뽑는 데 그치지 말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삼성 관계자는 “그간 훌륭한 인재를 많이 스카우트했으나 기업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삼성을 떠난 경우가 꽤 있었다”며 “이런 일이 없도록 스카우트 후 관리를 잘 하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허와 관련해 이 회장은 “지금은 특허 경쟁 시대”라며 “기존 사업뿐 아니라 미래사업에 필요한 기술이나 특허는 투자 차원에서라도 미리미리 확보해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삼성의 한 임원은 “애플의 초고속 성장에 이 회장이 자극을 받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 회장 지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애플과 관련됐다는 것이다. 우선 소프트 기술을 강조한 부분이 그렇다. 애플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를 잇따라 히트시킨 원동력이 바로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같은 소프트 기술이라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용 애플리케이션만 놓고 봐도 삼성은 애플에 절대 열세다. 삼성과 애플의 소프트 기술의 차이는 2분기 실적에도 반영됐다. 애플은 올 4~6월 순이익이 73억 달러(약 7조70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124% 늘어난 반면, 29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2분기 순이익은 3조51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8% 줄었다. <관계기사 14면>

 더구나 애플은 내년에 TV까지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으로선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소프트 기술을 당장 확보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삼성 내부의 시각이다. 특허와 관련해서도 삼성전자는 애플과 침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 싸움은 애플이 먼저 걸었고, 삼성도 맞소송을 했다. 삼성이 미리 확보한 특허가 없었다면 애플에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전시회 역시 애플에 큰 비중을 뒀다. 관람을 한 삼성의 임원은 “경쟁사 모델 중 상당수가 애플 것이었다”며 “애플의 강점을 파악하고 배울 것은 배우라는 메시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삼성 임직원들은 이 회장이 전에 없이 강한 표현을 썼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금 당장 확보하라” “악착같이 배워라”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도 말라”는 부분이다. 삼성 관계자는 “전에 없이 강한 어조”라며 “이 회장이 지난달 ‘그룹 내 부정부패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한 것에 이어 계속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 회장은 전시회를 돌아본 뒤 구내 식당에서 임직원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직접 배식을 받았다. 악수를 청하는 직원들의 요청에 일일이 응했다. 이 회장과 같은 탁자에는 김순택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대리 이하 직원 10명이 앉았다.

함께 식사를 하는 1시간 동안 간간이 웃음이 터졌다. 이 회장은 약 20분 동안 갈비탕을 든 뒤 직원 10명을 하나하나 옆자리로 불러 회사 생활에 힘든 점이나 건의할 점은 없는지 묻고 얘기를 들었다.

권혁주 기자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이건희 회장이 ‘품질경영’을 선언한 1993년부터 세계 일류 기업과의 제품 경쟁력을 비교하기 위해 2년에 한 번 열린다. 올해는 18일부터 29일까지 67개 품목에 걸쳐 삼성전자 모델 167개, 경쟁사 모델 183개를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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