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View 파워스타일] 피아니스트 김정원 “다른 길 생각해 본 적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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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5번’은 틀린 말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을 네 곡 남겼다. 하지만 2007년 음악학자 알렉산더 바렌버그가 협주곡 5번을 발표했다. 작곡가가 남겼던 짧은 스케치를 교향곡 2번의 아이디어를 빌려 확장시킨 작품이다. 라흐마니노프 후손의 ‘인증’을 받고, 악보사·음반사를 통해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을 붙였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씨는 지난해 이 작품을 국내 초연했다. “평생 연주를 해도 전체 피아노 작품의 3분의 1도 다뤄보지 못할 거예요. 제겐 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망과 조급함이 있죠.” 그가 늘 가방 ① 에 악보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다. 서울 강북·강남에 연습실을 따로 마련해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른다.

“외국 생활을 오래한 젊은 음악가라 여유롭고 재미있는 성격일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저는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열네 살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2009년 경희대 교수로 임용되며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1년에 반 이상을 외국에서 연주하며 보낸다. 한국에서 지낼 때도 늘 여권 ② 을 가지고 다닌다. 외국 스케줄이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번은 외국 매니저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그때 바로 비행기를 타면 홍콩에서 리허설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여권이 없어서 비행기를 못 탔죠. 그 이후 넉넉한 여권 지갑을 샀고, 늘 가지고 다녀요.”

비행기 안은 그의 또 다른 집이다. 지금껏 모은 클래식 음반 3000여 장을 160GB짜리 MP3 플레이어 ③ 에 담았다. 비행기 안에서는 외부 소음이 철저히 차단되는 헤드폰을 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음반이나 악보를 사러 혼자 명동에 가곤 했어요. 어려서부터 음악밖에 몰랐고,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죠.” 그의 생활은 음악을 잘 하는 데 대부분 맞춰져 있다. 매일 계획을 세워 연습하는 등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어려서부터 ‘놀아도 잘 치는 피아니스트’란 오해를 많이 받았지만 사실은 노력형”이라 했다.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라 덧붙였다.

“한때는 빨리 유명해져 얻고 싶은 게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60세가 넘어서도 새로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가장 큰 꿈이죠. 체력도 열정도 이를 위해 관리한다고 생각해요.” 김정원씨는 10월 말 일본 8개 도시에서 독주회를 연 후 12월 한국을 순회할 예정이다. 일본과 한국 프로그램은 완전히 다르게 짰다. 역시나 ‘새로움’과 ‘공부’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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