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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자크 로게의 지팡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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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진홍
논설위원

# 평창에 쾌거를, 대한민국에 영광을 안겨준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최종결정일 하루 전날 남아공 더반의 플레이하우스 극장에서 열렸던 제123차 IOC총회 개막식에서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훈장 수여와 함께 아프리카 추장들이 짚을 법한 스타일의 독특한 지팡이를 선물했다. 로게 위원장이 그 지팡이를 짚고 단 아래로 내려오자 청중은 폭소를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그 순간 나의 뇌리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자크 로게의 지팡이를 훗날 우리가 가질 수 있다면….”

 # 이기붕, 이상백, 장기영, 김택수, 박종규, 김운용, 박용성 등을 IOC위원으로 배출한 바 있는 우리나라는 현재 두 명의 위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문대성 선수위원이다. IOC위원이 되는 경로는 네 가지다. 첫째는 일반위원이다. 이 회장이 이 경우다. 종래는 종신임기였지만 현재는 70세까지고 1999년 이전에 피선된 이 회장의 경우엔 80세가 임기만료다. 둘째는 선수위원이다. 올림픽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 응모할 수 있다. 임기는 8년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문 위원이 이 경우다. 그는 2016년까지 선수위원으로 활동한다. 셋째는 국제스포츠연맹(IF) 출신 중에서 뽑는 경우로 이 역시 임기는 8년이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국제유도연맹회장으로 IOC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국제연맹회장직에서 물러나면 임기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자격이 정지된다. 넷째는 국가별 올림픽위원회(NOC, 우리의 경우엔 대한체육회와 통합 운영)의 수장 중에서 뽑는 경우다. 이 역시 임기는 8년이다. 이기붕, 이상백, 장기영, 김택수, 박종규, 김운용 등이 모두 이 경우로 IOC에 진출했다.

 # 현재 우리나라에서 IOC위원을 염두에 두고 뛰는 이들이 적잖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회장, 강영중 세계배드민턴연맹회장 등을 비롯해 평창유치위원장이었던 조양호 한진회장, 김승연 한화회장 등도 자천타천으로 거명된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고민 중 하나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이다. 대개 60세 전후의 나이여서 70세 은퇴라는 마감시간의 압박이 적잖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재열 대한빙상연맹 회장 같은 젊은 피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어 보인다.

 # 하지만 향후 IOC의 대세는 올림픽 선수 출신, 즉 올림피언들의 대거 진출이다. 차기 IOC위원장으로 유력한 토마스 바흐 IOC부위원장도 올림픽 선수 출신이다. 그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였다. 따라서 우리도 문대성 이후 김연아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국가대표와 프랑스 국가대표를 모두 경험했던 쇼트트랙의 최민경 같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도전도 눈여겨볼 만하다. 뿐만 아니라 선수 출신으로 국제스포츠연맹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광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 김나미 국제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 등도 다크호스다.

 # 물론 IOC위원만 많이 배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각종 국제스포츠기구에 더 많은 한국인들이 진출해 요소요소에서 역량을 쌓고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보았듯이 IOC위원의 권한과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래서 더 많은 IOC위원을 배출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수장인 IOC위원장을 노려보는 것은 또 하나의 뚜렷한 목표와 비전이 될 수 있다. 유엔사무총장도 배출한 나라다. IOC위원장을 배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8대 위원장인 자크 로게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7명, 미국에서 1명이 IOC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이젠 아시아에서 가져올 때가 됐다. 그 처음을 대한민국 출신 IOC위원이 도전해 보겠다는 각오로 사람을 키우자. 안 될 것은 없다. 꿈을 갖고 비전을 담아 해보자. 그것이 평창의 성공을 지켜내고 대한민국의 스포츠 외교력을 놀랍게 업그레이드 시킬 터이니까.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