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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조선의 역관, 이들에게 외국어는 무기이자 돈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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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선시대 중국 베이징으로 가는 사신의 행차를 연행(燕行)이라고 했다. 사진은 조선의 사신을 그린 연행도의 일부. 숭실대박물관 소장.

조선 역관 열전
이상각 지음, 서해문집
336쪽, 1만5000원

소설가(1921~92) 이병주는 하나의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와 만나는 것이라 했다. 이는 문화를 뜻하는 것이나 우리 역사를 짚어보면 외국어 구사 능력은 ‘벼슬’이라 할 만했다. 일제강점기나 미 군정 치하에서 일본어나 영어를 아는 이들의 행적이 좋은 예다. 멀리 들 것도 없다. 요즘 유행하는 조기유학이란 것도 그 심저에는 계층 상승의 만능열쇠인 영어를 익히려는 목적이 가장 클 것이다.

 책은 조선 시대 사대교린 정책의 실무를 맡았던 역관(譯官)들의 활약과 치부를 다뤘다. 대부분 중인 출신으로 외교 실무를 담당했던 이들은 때로는 국가의 위기를 구하기도 했고, 때로는 청나라나 러시아의 위세를 업고 횡포를 부리다 못해 자기네 임금을 암살하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正史)를 중심으로 풀어간 만큼 인물 이야기치고는 소략해 읽는 맛은 다소 덜하지만 그간의 우리 역사에서 소홀히 취급됐던 인물들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선조 때 활약한 한학역관 홍순언은 임진왜란의 저울추를 돌려놓았다고 평가 받는 큰 인물이다. 사행(使行) 도중, 훗날 명의 병부상서 등을 지낸 석성의 후처가 된 여인을 구해준 인연으로 임진왜란이 터지자 명의 군사적 지원을 성사시켰다. 이에 앞서 명 황조의 사서에 이씨 왕가의 족보가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는 종계변무(宗系辨誣) 문제를 해결해 왕실의 경호를 맡는 종2품직 우림위장까지 올랐다. 이는 양반과 중인 신분의 경계를 무너뜨린 일로 사간원에서 들고 일어날 정도로 파격적 인사였다.

 홍순언이 나라를 구한 외교첨병이었다면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인조를 괴롭힌 정명수다. 그는 광해군 때 강홍립 휘하로 후금과의 싸움에 출전했다가 포로가 된 뒤 귀국을 거부하고 여진어를 배워 청나라의 역관으로 활동한 호역(胡譯)이다. 노비 출신인 그는 병자호란 때 청군의 선봉 용골대의 통역으로 다시 조선 땅을 밟은 후 호가호위의 진수를 보여줬다. 청나라 사신으로 한양으로 내려오는 길에 기생을 빼앗고, 관리를 구타하는 행패는 예사였다. 관노였던 처남, 친구 등은 현감, 군수가 됐다.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의 친구 하나를 장살(杖殺)했던 호조판서 민영휘는 자기가 맞이해야 할 사신단에 정명수가 끼어 있다는 말을 듣자 사직서를 내고 도망쳤을 정도였다.

 역관들은 사행을 따라 다니며 개인적으로 밀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기도 했다. 비단 수출, 유황 수입 등 대일무역을 독점해 조선 경제계를 주무르던 왜학역관 변승업은 “내 재산으로 양반인들 못 사겠는가”고 장담했는데 결국 아들 변이창을 첨지, 즉 양반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단순한 ‘돈벌레’는 아니었던 것이 1709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시중에 푼 돈 50만냥의 채권문서를 모두 태워버리라고 유언을 했다. 결국 이로 인해 훗날 그의 가문이 패가망신을 면하는 방패가 되기도 했으니 나름 혜안이 있었던 셈이다.

 책은 개화기 윤치호까지 다루되 단순한 인물 이야기에 그친 게 아니라 당시 정치 상황과 역관 양성소인 사역원의 교과과정, 교재, 역관 시험 등을 덧붙여 역관사 완결판이라 부를 만하다. 단지 당시 관직, 용어가 별도 설명 없이 등장하는 대목이 많아 교양서치고는 쉽게 읽히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김성희(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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