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앞두고 휘청거리는 조세정책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법인, 개인, 단체 등에 대한 각종 세제지원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들 내용의 상당수는 실무적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것들이어서 4.13총선을 의식, 일단 발표해 놓고 보자는 식의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기본적인 조세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내용들도 적지 않아 이번 선거를 계기로 조세체계 자체가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각 부처들은 해당 업계의 민원성 조세지원방안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바람에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의 세제실 일부 과는 타당성을 검토하느라 일상업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고 있다.

▲법인.단체에 대한 지원책 남발 재경부는 지난달 23일 금융정책협의회를 거쳐 증권거래소 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거래소 상장 중소.벤처기업에 대해서도 이익금의 50%를 사업손실준비금으로 적립토록 해 5년간 결손을 채운 뒤 남은 금액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는 코스닥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거래소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코스닥과 같은 수준의 세제지원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실무차원에서는 의견이 다르다. 거래소에 상장될 정도의 중소.벤처기업들은 상당히 우량한 기업들인데다 이들에게 세제혜택을 줄 경우 경쟁관계에 있는 비상장.등록 법인들에게는 상대적인 불이익이 돌아가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거래소와 코스닥의 균형발전을 꾀한다면 차라리 코스닥에 대한 조세지원을 줄이는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다. 코스닥의 경우 과열이 우려될 정도로 활성화된 만큼 조세지원의 당초 목적은 달성됐다는게 재경부 실무자들의 생각이다.

이와 함께 재경부는 지난 9일 상공회의소 조찬회에서 이 단체가 `지식기반경제화 펀드'를 조성, 회원사들에게 정보화투자용으로 자금을 빌려줄 경우 조세지원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무적인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발표였다.

정부는 올초에 정보화투자를 하는 기업들에는 세액공제를 해주겠다고 이미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이 펀드에 대해 조세지원을 할 경우 해당 기업들은 이중적인 세제혜택을 받게 된다. 따라서 재경부 실무자들은 이 펀드에 대해서는 조세절차상 편의 말고는 지원해줄게 없다는 입장이다.

▲유권자를 의식한 조세지원 재경부는 지난 8일 국제유가 상승분은 탄력세율 조정 등으로 흡수, 현재의 국내소비자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 2일부터는 1차 탄력세율을 적용해오고 있다.

재경부는 그러나 올초만 해도 국제유가 상승분은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반영해 소비절약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며 대부분의 조세전문가들도 이에 동의 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갑자기 원칙을 버린 것은 총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다.

지난 3일 발표된 `중산.서민층 지원대책'에는 개인연금의 소득공제폭을 현행 납임금의 40%(72만원한도)에서 더욱 확대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는 선진국처럼 납입금에 대해서는 소득공제를 해주는 동시에 연금소득에 대해서도 과세해야한다는 기본 방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재정학자들은 연금 과세를 종합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상황에서 소득공제만 확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또 재경부는 근로자들이 우리사주를 3년이상 보유하면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비과세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사주의 장기보유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라는게 재경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는 외환위기이후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로자들을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우리사주 의무 보유기간을 당초 7년에서 올해부터 1년으로 축소한 바 있다.장기보유 정책을 포기한 뒤 불과 몇개월만에 장기보유를 유도하는 정책을 내놓은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정책이 신중하지 못하고 즉흥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비과세되는 근로자우대저축과 농어가목돈마련저축 등도 올해말에 종료될 예정이나 2년 연장키로 했다. 재경부는 내년부터 10% 저율과세되는 세금우대저축이 통합되고 올해 하반기중에 비과세 생계형저축을 별도로 마련하는 만큼 기존의 비과세 상품은 전면적 손질이 불가피하다는게 당초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판단이 작용해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말았다.

▲쇄도하는 민원성 조세지원 방안 재경부 세제실의 일부 과는 최근들어 일상업무를 제대로 못할 지경이다. 각 부처나 단체들이 들이미는 각종 조세지원 방안을 검토,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를 일일이 정리해 통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경부는 최근 중소기업특별위원회로부터 분사기업을 창업으로 인정해 조세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분사는 순투자, 순고용이 발생하는 창업의 성격과 다른데다 분사업체들이 우량한 기술.인력,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인규베이터적 지원에 나설필요가 없다는게 재경부의 생각이다.

특히 분사는 삼성, 현대 등 대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코스닥 상장을 통해 기업의이익을 극대화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분사에 해당하는 지원 만으로 충분하다는게 재경부의 판단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각종 세제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법체계와 조세형평 등에 어긋나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그러나 일단 검토는 거쳐야 하는만큼 일상 업무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기자 keunyoung@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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