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공짜표' 몸살…고위공직자 요청 줄이어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부 ○○과 사무관입니다. 우리 부 ○○○차관 부부와 ○○○국장 부부,○○○심의관 등 총 5명께서 '명성황후' 를 관람하시고자 하니 좋은 좌석표를 보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

지난 8일 정부 모 부처로부터 뮤지컬 '명성황후' 의 사무실에 전송된 팩스의 내용이다.

오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명성황후' 가 고위 공무원들의 초대권 요구에 몸살을 앓고 있다.

'명성황후' 가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뮤지컬' 로 자리잡으면서 관람권을 얻을 수 없느냐는 공직자들의 요청이 잇따르고 있는 것. 지난달 25일 개막 이후 지금까지 모두 50여건의 부탁전화가 걸려왔다. 대부분 " '어른' 께서 한번 보시려고 하니 신경써 달라" 는 내용이다.

초대권을 부탁한 정부기관은 청와대.대법원.국방부.외교통상부.문화관광부.해양수산부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대기업에서도 요청이 있었다.

"먼저 전화예약 번호를 알려줍니다. 그러나 저쪽에선 '그 말이 아니잖아요' 라는 식으로 나와요. 다른 공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 '명성황후' 관계자의 말이다.

그렇다고 제작진이 이같은 초권 요청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정부의 지원을 계속 받아야 하고 해외공연도 추진 중이라 관계 공무원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공연 전문가들은 21세기 문화입국을 선도해야 할 고위 공직자들의 이같은 '공짜표' 요구를 시대조류에 역행하는 반문화적 구습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극평론가 이혜경(李惠景.국민대) 교수는 "지도층들이 문화예술도 다른 물건처럼 제 돈을 내고 감상해야 하는 상품이란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며 "초대권을 자신의 위치와 권위를 상징하는 것처럼 여기는 발상부터 고쳐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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