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의 일그러진 벤처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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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회가 벤처 열풍에 휩싸여 돈과 인력이 집중되면서 기대 못지 않게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부 벤처 갑부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 끼에 10만~20만원짜리 점심에다 하루 저녁 술값으로 수천만원을 뿌린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이들이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는 바람에 벤처 기업이 몰려 있는 서울 테헤란로 주변 빌딩과 고급 아파트가 동이 날 지경이라고 한다.

국내 벤처 산업은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인터넷 열풍에 맞물려 이미 5천여개가 활동 중이며, 지금도 계속 생기고 있다.

이들은 대기업 공백을 메우면서 한국 경제의 환란(換亂)극복에 큰 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또 지금도 대부분의 벤처 기업인들은 쪽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다시피 하며 기술개발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또 25개 벤처기업이 거액을 모아 청소년 복지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벤처 산업이 뭔가 그릇된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미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코스닥 열풍과 맞물려 벤처는 한탕주의와 머니 게임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수십억, 수백억원을 거머쥔 성공 사례가 대서특필되면서 기술개발과 건전 경영보다 코스닥을 통한 억만장자의 꿈만 좇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벤처 대주주들이 잽싸게 주식을 팔아 거액을 챙기고 재벌 흉내를 내 계열사 확장에 나서는 행태도 보인다. 정부 지원의 맹점을 틈타 돈이나 챙기려는 ''무늬만 벤처'' 도 수두룩하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05년까지 벤처를 4만개로 늘릴 계획이며 대기업들도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수조원의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으며 공무원.변호사 등 고급 인력들이 대거 벤처로 옮기고 있다. 모 대학 전산과 신입생 중 80%가 벤처 사업가를 희망한다니 그 열풍을 가위 짐작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이젠 벤처가 미래 한국 경제의 새 기업 모델로 자리잡도록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정비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우선 벤처 기업인들의 윤리성과 투명성이 급선무다.

벤처의 성공 요소인 기술력.결속력.아웃소싱에 주력하면 부(富)는 절로 따른다. 대주주의 잽싼 주식 매각을 제한할 수 있는 엄격한 기준도 필요하며, 양에 치중하는 정부 정책도 개선해야 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총선 후면 코스닥 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가 나오고, 이 과정에서 자칫 개인투자자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만만찮다.

이는 벤처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미리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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