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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핵티비스트<Hacktivis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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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관우의 목을 베어서였을까. 삼국지에서 오나라 손권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저 형 손책의 요절 덕분에 권좌를 차지한 ‘푸른 눈에 붉은 수염’으로 치부될 따름이다. 하지만 그의 시호는 대황제(大皇帝)였다. 비록 제갈공명에게 당했지만, 여하튼 적벽대전의 승자다. 그의 지론이 ‘적의 적은 동지’였다. 중모(仲謀)를 자(字)로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대 외교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중국과 ‘핑퐁’을 앞세워 손잡은 것도 소련을 의식해서다. 적의 적은 동지인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이이제이(以夷制夷)’가 가장 효과적인 제어 수단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이폰를 앞세운 애플에 맞서 삼성·노키아·모토로라가 안드로이드로 연합한 것도 더 큰 적을 겨냥한 ‘적과의 동침’일 터다.

 ‘36계’에 ‘부저추신(釜底抽薪)’이 있다. 부글부글 끓는 솥에 찬물을 붓는다고 가라앉으랴. 이내 비등(沸騰)하기 마련이다. 솥 아래 불붙은 장작을 빼내는 것이 원인을 해소하는 첩경이다. 그래서인가. 최근에는 산업스파이 대신 핵심 인력 스카우트다. 피 흘리는 전쟁보다 적장(敵將) 포섭이 빠른가.

 천재 해커 조지 호츠(George Hotz)가 엊그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페이스북에 영입됐다. 그는 ‘아이폰’의 이동통신업체 제한장치를 풀어 ‘탈옥’시킨 장본인이다. 뉴스주간지 ‘타임’의 지난해 최고 인기 기사도 ‘아이폰 탈옥(iphone jailbreak)’이었다. 그는 얼마 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S3)’을 해킹해 제소되기도 했다. 해커 ‘어나너머스’가 소니를 공격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MS도 게임기 ‘엑스박스(X-Box)’를 해킹한 14세 소년을 고소하는 대신 함께 일하기로 했다. 이들 모두가 개방과 공유를 앞세운 해커이자 행동가다. 바로 ‘핵티비스트(Hacktivist)’다. 따지고 보면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도 해커 출신이다.

 국내 한 고교생이 개발한 ‘앱’들이 화제다. 공급자 위주의 ‘멍청이 스마트폰’을 사용자 위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들이다. 개발자 이름을 붙여 ‘규혁 롬’이다. 모토로이를 비롯해 몇몇 기기의 족쇄를 풀어 네티즌들이 환호작약이다. 그런데 신규 ‘앱’ 개발진척도는 37%다. 기말고사 때문이란다. 마침 고려대가 ‘사이버 국방학과’를 신설한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세계가 ‘사이버 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차제에 ‘규혁 롬’ 주인공을 수시모집으로 뽑으면 어떤가.

박종권 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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