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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 꿰뚫는 감각 탁월 … 영화마다 대박 ‘Mr. 블록버스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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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32면

촬영기와 영사기를 발명한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다. 1895년 최초의 ‘활동사진’도 프랑스인 뤼미에르 형제가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를 20세기부터 독보적 오락산업으로 발전시킨 초기 공로자는 몇 명 안 되는 유럽 출신 유대인들이다. 할리우드 왕국을 창건한 인물 대부분은 문화·예술 분야의 기본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의류상, 세탁소, 주류상 등 자영업자들이었다. 이들은 할리우드 초기 7대 메이저 중 디즈니를 제외한 유니버설, 패러마운트, MGM, 폭스, 워너, 컬럼비아 등 6개사를 설립했다. 이후 할리우드는 유대인의 아성이 되었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할리우드 흥행 마술사 제리 브룩하이머

국내에서도 방영되고 있는 인기 ‘미드’(미국 드라마)인 과학수사극 CSI의 3개 시리즈(라스베이거스·마이애미·뉴욕)는 전 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장수 TV 드라마다. CSI뿐 아니라 손대는 영화나 TV 드라마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미국 유대인 제작자가 있다. 1945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독일계 유대인 제리(제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사진)다. 할리우드 역사상 걸출한 제작자가 많았지만 누구도 브룩하이머만큼 경이적인 성공을 거둔 인물은 없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영화제작자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영화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애리조나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브룩하이머는 한동안 광고사진업에 종사했다. 그러다 펩시콜라와 자동차 폰티악의 광고를 제작하면서 차차 영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CSI 마이애미, 중남미 시장 겨냥해 제작
1970년대 초 영화 제작을 시작한 브룩하이머는 초기에 만든 몇 작품에서는 실패를 맛본다. 그러다 행운이 찾아온다. 신인배우 리처드 기어 주연의 80년 ‘아메리칸 지골로’와 무명배우 제니퍼 빌스를 스타로 만든 83년 ‘플래시 댄스’ 등 두 편의 영화는 그를 일약 중견제작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뒤엔 단 한 차례의 슬럼프 없이 승승장구했다. ‘비버리힐스 캅’ ‘탑 건’ ‘나쁜 녀석들’ ‘크림슨 타이드’ ‘더 록’ ‘콘에어’ ‘아마겟돈’ ‘코요테 어글리’ ‘리멤버 타이탄’ ‘블랙호크 다운’ ‘진주만’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아서왕’ ‘내셔널 트레져’ 시리즈, ‘데자뷰’ ‘페르시아의 왕자’ 등은 모두 대박을 낸 성공작이다. ‘탑 건’의 톰 크루즈, ‘비버리힐스 캅’의 흑인배우 에디 머피, ‘더 록’의 니컬러스 케이지는 브룩하이머가 키워낸 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룩하이머는 영화제 수상을 의식한 예술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그는 영화나 TV 드라마는 탄탄한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재미와 함께 흥행성이 있어야 한다는 그만의 지론을 편다. 그래서 액션물, 수사극 그리고 공상과학물을 집중적으로 만든다. 멜로드라마 등 애정물은 거의 없다. 난해한 애정물은 제아무리 잘 만들어도 흥행에는 한계가 따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의 시대별 취향을 꿰뚫어 본다. 관객이 한 가지 조류에 식상할 기미가 보이면 순발력 있게 새 장르를 개발해 대중을 유인한다. 그리고 그는 미국 국내 시장에 연연치 않고 항상 세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기획한다. CSI의 마이애미 시리즈는 중남미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브룩하이머는 할리우드의 실력자다. 그는 감독과 연기자 캐스팅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장래성 있는 신인 발굴·육성에도 일가견이 있다. 몸값만 비싼 배우보다는 조니 뎁 같은 개성 있는 연기파를 선호한다. 그래서 신인 감독·배우 모두 브룩하이머와 일하기를 원한다. 2003년 미국의 잡지 ‘주간연예(Entertainment Weekly)’는 브룩하이머를 할리우드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로 소개했다. 2007년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는 100대 유명 인사 리스트에서 그를 39위에 올려놓았다. 대부호인 브룩하이머는 다른 유대인 부호들처럼 자선사업에도 많은 돈을 낸다.

재미있지만 중독성 강한 작품이 대부분
유럽의 진보·보수 정당과 달리 미국의 공화·민주 양당은 정책 차이가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다만 민주당이 공화당보다는 상대적으로 리버럴하고 소수민족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정도다. 리버럴한 성향이 대다수인 미국 유대인은 정서적으로 민주당에 가깝다. 각종 선거 때 유대인 유권자의 70%는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다. 그런데 브룩하이머는 예외다. 많은 미국 연예인이 민주당을 후원하는 것과 달리 그는 공화당을 열렬히 지원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2008년 대선 때는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 진영에 적지 않은 정치헌금을 했다. 그리고 각종 선거 때마다 공화당 후원회에 헌금한다.

영화 등 영상산업에 대해 반(反)유대주의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영화는 ‘시온의정서’에 나와 있는 유대인의 세계 지배전략을 수행하는 도구 중 하나다.” 시온의정서는 20세기 초 제정러시아에서 처음 등장한 책자로 주 내용은 유대인의 세계 지배전략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문서를 유대인을 음해하기 위한 위작(僞作)이라고 펄펄 뛰는 반면, 반유대주의자들은 유대인이 만든 진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시온의정서 제13장에는 “대중을 스포츠·연예·오락에 심취토록 해 사고능력을 마비시킨다”는 구절이 나온다. 대중 우민화 전략이다. 시온의정서의 진위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음모론적 시각을 무시한다 해도 영화를 비롯한 영상 오락물은 인간을 무의식 중에 세뇌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브룩하이머가 제작하는 영화는 대부분 재미있지만 중독성 또한 강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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