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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과 고흐가 왜 싱가포르 호텔에 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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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싱가포르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복합리조트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3개의 타워 위에 큰 배를 얹은 모양의 호텔 앞에 연꽃 모양의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이 들어서 있다.


융합의 시대다. 문화와 여가의 만남이 확산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지난해 문을 연 복합리조트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화제다.

 일단 호텔 건물부터 색다르다. 세계적 건축가 모셰 샤프디가 설계했다. 건축과 예술을 강조하는 최근 호텔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57층짜리 세 개의 타워로 구성된 호텔 건물 옥상에 큰 배(스카이파크)를 얹어놓은 외관부터 압도적이다. 모셰 샤프디는 평균 26도, 최고 52도까지 경사진 호텔을 선보이며 ‘21세기 건축의 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m 상공에 축구장 2개 크기의 스카이파크를 설치하는 아이디어도 처음엔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메가시티에서 녹지와 공공장소를 확보하려면 정원을 건축 구조물 안에 집어넣거나 아예 건물 위로 올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그의 철학이 구현됐다.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 얼라이브’전. 고흐 그림의 디지털 이미지가 수없이 바뀌며 흐른다.

 스카이파크에는 주변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와 산책로, 레스토랑과 야외 수영장이 있다. 고층 빌딩숲을 아래로 두고 야간수영은 이 호텔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홍보담당자 발 추나는 “호텔은 단지 잠자는 곳이 아니다. 각종 문화와 레저,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쇼핑 등을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복합문화단지를 지향한 게 성공했다”고 말했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연꽃 모양의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글래스 파빌리온 등 부속건물도 역시 샤프디의 작품이다. 특히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의 외관도 독특하다. 손가락 10개를 펼친 듯한 모양이다. 각 손가락 내부가 전시공간이고, 손톱 부위의 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온다.

 뮤지엄에선 3~4개의 수준 높은 전시가 연중 열린다.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테마로 한 상설전 외에 고흐·달리 등의 작품이 관객을 맞는다. 사방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고흐 그림 디지털 이미지로 장식해 마치 고흐의 그림 안으로 들어온 듯한 환상을 자아내는 ‘반 고흐 얼라이브’ 전이 인기다. 회화·조각·가구 등 달리 작품세계를 일별하는 ‘달리’전, 9세기 싱가포르 앞바다 난파선 유물을 전시한 ‘난파선’전도 흥미롭다.

 총 4000석이 넘는 두 개의 대형 공연장에서는 유명 공연들이 잇따라 열린다. 디즈니 가족 뮤지컬 ‘라이온 킹’과 ‘태양의 서커스’가 공연 중이다. 호텔 곳곳을 장식한 미술품도 눈길을 끈다. 호텔 천정에는 총 무게 14톤, 총 길이 40m의 작은 철판 조각이 늘어뜨려져 있다. 세계적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드리프트(drift)’다. 이밖에 솔 르윗·네드 칸·제임스 카펜터 등 블루칩 작가들의 대형 설치작품만 10여 점이다.

 이처럼 호텔 곳곳에 문화적 요소를 배치하는 전략은, 최근 국가적 차원에서 ‘문화 강화’를 내세운 싱가포르 정부의 방침과 무관치 않다는 평이다. ‘관광 한국’을 열어가는 데 적잖은 힌트가 된다.

 보수적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해 이곳과 리조트 월드 센토사 두 곳에 카지노도 처음 허가했다. 당시 현지에선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카드 두 장을 사람 인(人) 자 모양으로 세워놓은 샌즈 호텔의 외관 역시 카지노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 호텔은 다음 달 방송하는 KBS 드라마 ‘스파이 명월’에 잠시 등장한다.

싱가포르=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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