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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13> 위상 높아진 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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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서울 중랑경찰서에는 여자 경찰로만 구성된 경제수사팀이 있습니다. 여성·노인·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범죄가 늘어난 데다 여성 경제범이 많아져 여성 수사관들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황경희(46·경감) 팀장은 “우리 팀은 사건을 ‘털어낸다’가 아니라 ‘치안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인드로 일한다”고 말합니다. 과거 여경이 남자 경찰을 보조하는 데 머물렀다면 요즘은 국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일선에 여경을 전진 배치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날로 그 위상이 높아지는 ‘여경’의 모든 것을 짚어 보겠습니다.

김효은 기자

여경 창설 65주년을 맞아 여경은 과거 남성 경찰을 돕는 역할에서 벗어나 직접 강력사건을 수사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로 발돋음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 대민 서비스를 하고 있는 여경의 모습.



여경 비율 1946년 1.8% → 2011년 6.9%

최초의 여자 경찰은 1946년 7월 1일 탄생했습니다. 미군정청 경무부 공안국 산하에 여자경찰과가 신설되면서 간부 15명과 여경 64명이 처음 배치됐지요. 당시 경찰은 “여성 피의자의 수색, 여성 범죄인 감시, 부인을 대상으로 하는 단속, 불량 소년·소녀 조사, 미아와 노인에 대한 보호조치 등 남자경찰관이 하기 힘든 일을 전담케 하기 위해 여경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듬해 여경 500명이 일선에 배치됐습니다. 당시 경찰 총 정원이 2만 7600명이었으므로 여경의 비율은 1.8%였던 셈이지요. 2011년 현재는 어떨까요. 5월 31일 기준으로 여경 총 인원은 7013명이며 전체 정원의 6.9% 로 늘었습니다.

‘여자경찰서’

도로에서 교통 정리와 신호 위반 단속을 하는 여경.

파출소나 지구대에서도 남성 경찰과 함께 야간순찰을 하는등 여경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여경 창설 초창기에 여경들만 근무하는 ‘여자경찰서’가 있었습니다. 1947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서울 여자경찰서가 첫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민주경찰의 여경관은 일반경찰서에 편입돼 남자경찰관의 보좌격에 지나지 않는다. 여경의 자주성을 북돋우려면 ‘여자경찰서’로 독립시켜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여경들은 전화를 받거나 문서를 작성하는 등 부수적인 업무만 했었다고 합니다. 당시 시대 상황은 북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넘쳤고, 실업자들이 무리를 이뤄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이 범죄에 노출돼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여경이 필요한 시점이었지요.

양한나 총경이 초대 서장으로 90명의 여경이 근무했습니다. 서장 전용차의 운전요원까지 여경이었다고 하네요. 초기 업무는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선전 벽보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벽보가 너무 많아 처음엔 물칠을 해서 벗겨내다가 조개탄 가루를 풀어 칠해 버리기도 했답니다. 풍속 단속도 했습니다. 당시 부녀자들이 아무 곳에서나 젖가슴을 보이며 아기에게 우유를 먹였고, 아이들도 날이 더우면 옷을 전부 벗고 거리를 돌아다녔는데요. 여경들이 이를 단속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또 도로에서 교통 단속도 했습니다. 일본 순사만 보던 시민들의 눈에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여경의 모습은 매우 신선했겠지요. 이후 인천·부산·대구 등에도 여자경찰서가 창설됐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참전해 부상병을 치료하고 호송하는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

60~70년대 암흑기 거쳐, 90년대 중흥기로

1957년 7월 여자경찰서가 창설 10년 만에 폐지됐습니다. 인구 팽창과 도시화로 새로운 경찰 체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여자경찰서가 없어지자 500여 명이던 여경 수도 200명으로 축소됐습니다. 일명 여경의 ‘암흑기’는 70년대까지 계속됐습니다.

여경의 중흥기는 1991년 8월 1일 경찰청 시대가 열리면서부터입니다. 80년대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여러 국제경기를 치르면서 여자경찰 1000명 시대가 열렸습니다. 업무영역도 여성·어린이·청소년 관련 업무를 넘어 형사·감식·대테러 업무 등 위험하고 어려운 분야까지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여성 최초 형사과장·파출소장 등 승진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지요. 2000년에는 상설여성기동대가 창설해 각종 집회 및 시위현장에서 질서유지를 담당했습니다. 이때 여경이 시위 현장에 나온 것과 함께 폴리스라인(질서유지선)이 처음 생겼지요.

조폭 잡는 여경까지, 종횡무진 활약

현재 7013명의 여경 중 일선 지구대나 파출소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1791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경제사범 등을 다루는 수사팀에는 821명이 근무 중이고,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를 다루는 강력팀에도 353명의 여경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주 여성이 늘고 그들의 인권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외국인 여경도 등장했습니다. 다문화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것인데요. 중국 출신 7명, 필리핀 출신 1명, 캄보디아 출신 1명의 여경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에서는 여경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자 매년 7월 1일 여경의 날에 맞춰 ‘으뜸 여경대상’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엔 경기 고양경찰서 강력팀의 박수진(35) 형사가 수상했습니다. 박 형사는 1년6개월 동안 조직폭력배 143명을 검거한 공적을 인정받았습니다. 고교 때 격투기를 배우기도 했던 그는 특수전사령부에서 부사관 생활을 하다 경찰특공대에서 여경 1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의 길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여경의 인기도 대단합니다. 여경이 되려면 경찰대학, 간부후보생 시험, 순경시험 등 크게 세 가지 코스 중 하나를 거쳐야 합니다. 가장 많은 인원을 뽑는 순경시험은 경찰학개론, 수사총론, 영어, 형법, 형사소송법 등 필기시험을 치르고 체력검정 테스트도 통과해야 합니다. 응시연령은 18~30세로 제한되어 있는데요. 올 초 149명을 뽑는 여자 순경직 공채에 7593명이 접수해 50.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977명을 뽑는 남자 순경직엔 2만 5986명이 지원해 26.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참고자료: 대한민국여경재향경우회 저서 『대한여자경찰 60년사』

‘여경 최초’ 기록 누가 갖고 있나

성매매 집결지 근절 프로젝트, 김강자 총경

2001년 1월 김강자 총경이 서울 종암경찰서 서장으로 부임하던 날, 미아리 텍사스촌의 성매매 업소 업주들이 벌벌 떨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김 서장은 이미 충북 옥천경찰서 서장을 하면서 관내 티켓다방을 몰아낸 전력이 있었습니다.

김 서장은 1970년에 순경으로 들어와서 여성 최초로 총경 승진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82년 여경 교통관리대장, 86년 초대 성폭력상담실장, 88년 올림픽 여경대장, 91년 여경 1호 방범과장 등 늘 ‘최초’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지요.

김 서장은 윤락업소 250곳을 직접 시찰하면서 “청소년에게 성매매 행위를 시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냈습니다. 매매춘과의 전쟁을 선언한 것이지요. 당시 소년계와 방범지도계를 한 번 이상 거쳤던 직원들을 전부 타 부서로 전출시켰습니다. 장기근무자와 업자 간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였지요. 여경을 월곡 파출소장으로 전략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김 서장은 미아리텍사스촌의 비밀 지하 통로를 방범 대원 100명과 함께 폐쇄시켰는데요. 이 통로는 미성년자 성매매가 은밀히 이뤄지는 루트였습니다.

여성 첫 파출소장, 최은정 경감

1993년 4월, 여경 창설 47년 만에 첫 여성 파출소장이 배출됐습니다. 서울 서초경찰서 반포본동 파출소장에 경찰대를 갓 졸업한 최은정(당시 22세, 경위)씨가 임명된 것입니다. 최 소장은 경찰대를 처음으로 졸업한 여자 경찰관 3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부하 직원으로 경찰관 14명, 의경 2명, 방범대원 5명이 있었는데 최 소장보다 나이가 적은 직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요즘은 지구대에 근무하는 여경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범죄와 싸우는 최일선 치안현장은 남자 경찰 중심이었지요. 태권도 1단, 합기도 1단의 무술 실력 보유자인 최 소장은 처음 우려에도 불구하고 94년 3월까지 별 탈 없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한번은 저녁시간에 거리를 지나는 여성을 희롱하던 취객의 팔을 비틀어 파출소로 데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여자 소장을 잘 모시고 근무에 열중해달라”며 당부하기도 했다지요.

지금 최은정 경감은 경기 의왕경찰서 경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파출소장 경험이 지금 경찰 생활을 하는 데 가장 큰 밑천”이라며 “후배 여경들이 자극을 받고 어려운 근무지에 자원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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