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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김명호의 중국사 … 좌·우 모두가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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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인 이야기』를 집필 중인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왼쪽)는 지난 40년 자료보다 현장에서 발품을 팔며 중국 공부를 했다. 그의 중국 이야기는 끝이 없다. 수없이 가지를 쳐나가고, 세세한 사실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책을 출판하는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큰 이야기꾼’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변선구 기자]


1990년대 중반 한국 독서계를 강타했던 일본인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의 『로마인 이야기』에 버금가는 한국인 필자의 『중국인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시각에서 풀어 쓴 중국인 얘기, 중국 현대사다. 필자는 국내 최고의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김명호(61)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출판사는 공교롭게도 『로마인…』을 낸 한길사다.

중앙일보의 일요판 신문인 중앙SUNDAY의 인기 연재물인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에 반한 한길사 김언호(66) 대표가 출간을 제안해 성사됐다. 첫 책 출간시기는 9월 중순, 전체 스무 권까지 늘어날 수 있는 방대한 분량이다. 한길사는 논픽션 저술로는 파격적인 2억원을 선인세로 이미 김 교수에게 지급했다. 그만큼 책의 값어치는 물론 상품성에도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서울 정동 성공회성당 옆 정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중앙SUNDAY 6월 19일자 33면에 실린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22회 기사.

-어떻게 한길사에서 출간하게 됐나.

 ▶김언호(이하 언)=95년 『로마인 이야기』 첫 책을 낼 때부터 우리와 보다 밀접한 내용의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동양, 그중에서도 중국이었다. 그러다 보니 김 교수의 중앙SUNDAY 연재 글이 눈에 들어온 것 같다. 한국인의 운명을 반듯하게 만드는 책을 낼 수 있겠다 싶었다. 출판을 결심하고 3년 전 김 교수를 처음 만났다. 그간 아마 백 번도 넘게 만났을 거다. 판소리의 고수(鼓手)처럼 장단을 맞춰주며 김 교수 얘기를 듣고 책의 방향을 가다듬었다.

 -한국인의 운명을 반듯하게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언=김 교수의 글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현대사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왜 21세기 들어 중국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역사적 실천을 해내는지를 최근세사, 그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통해 설명한다. 이런 중국 얘기를 접하다 보면 우리의 위치를 각성하게 된다. 우리의 현실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의 얘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중국인 이야기』는 우리 운명과 관계 있는 인문학 책이다. 인문학이 뭔가. 개인의 삶이든 국가든 어떻게 경영해 나갈지를 고민하는 학문 아닌가.

 -책이 중앙SUNDAY 연재 내용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김명호(이하 명)=지면의 한계 때문에 신문에 쓰지 못한 얘기가 많다. 신문 원고 한 꼭지가 200자 원고지로 11∼12쪽쯤인데 그 서너 배를 써놓고는 줄여서 신문사에 보내곤 했다. 그걸 다시 살리고 있다. 새로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 새로운 내용도 추가한다. 나와 직접 연관돼 쓰지 못했던 내용, 흥미로운 예술가와 언론인 얘기 등이 들어갈 것이다. 사진도 늘어난다. 집어넣고 싶은 사진이 많다.

 ▶언=김 교수는 중국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들의 심리구조를 꿰뚫어 보는 분이다. 광적으로 중국에 천착한 결과다. 게다가 문헌으로만 공부한 게 아니라 현장을 엄청나게 훑었다. 서너 달 전 베이징을 함께 갔는데 뒷골목 어디에 어떤 정치인이 살았는지, 소상하게 알고 있더라.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이 옷을 맞춰 입은 집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김 교수의 글은 박물관이나 고색창연한 서가에 꽂혀 있는 보통의 중국학 책과는 다르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연재 글은 사건과 인물에 따라 시기가 앞뒤로 오락가락했다. 책은 주제별로 비슷한 꼭지를 모을 생각이다. 그렇지만 서론·본론·결론이 확연히 구분되는 책은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 선인세 2억원은 모험 아닌가.

 ▶언=한길사는 큰 프로젝트를 좋아한다. 『로마인 이야기』 낼 때도 모두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열다섯 권을 만들어 모두 350만 부를 찍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책을 요구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제대로 된 중국 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 교수 글에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많은 정치인·지식인이 열광했다고 들었다. 공전의 ‘수퍼 셀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책이 나오면 독자 행사를 많이 열 생각이다. 독자와 함께 국민교과서로 만들고 싶다. 출간 기자간담회를 천안문에서 할 생각도 있다. 하지만 『중국인 이야기』는 상품성으로만 따질 수 없는 큰 작품이다. 선인세 2억원은 한국의 인문학자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다.

 -김 교수는 40년간 중국 연구에 천착했다. 중국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지나. 어떤 나라인가.

 ▶명=다른 문명은 인간이 진화하면서 원숭이의 꼬리를 떼어낸 것처럼 다 쇠퇴했다. 하지만 중국 문명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뉴스를 쏟아낸다. 이런 문명 유지의 비결은 한자문화 때문인 것 같다. 2000년 전 한나라 때부터 교육과 기록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지금 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중국식 자본주의다. 사상적으로는 과도기인 것 같다. 공자를 대체할 만한 사상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현재 최고의 가치는 돈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사정이 나아지면 뭔가가 튀어나올 것도 같다.

 -중국인의 교육열은 어느 정도인가.

 ▶명=1920년대 사진을 보면 세수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프랑스 등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일전쟁 때는 ‘전시일수록 교육은 평소와 다름없어야 한다’는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철학에 따라 포화 속에서 대학생을 교육했다. 베이징대·칭화대·난카이대 3개 대학을 합쳐 만든 서남연합대학이 대표적이다. 이 대학은 일본군을 피해 후난성 창사(長沙), 윈난성 쿤밍(昆明) 등지를 8년간 전전했다. 여기서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두 명이나 나왔다.

 -기록문화를 중시한다고 했는데.

 ▶명=중국에서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일기를 쓴다. 시골의 잡화상 영감이 중일전쟁 때 일본 전투기가 출몰할 때마다 이를 기록한 일기를 발견한 적이 있다. 영감에게는 사적인 기록이지만 전쟁 연구자에게는 틀림없는 전쟁 기록이다. 또 사람들이 편지를 써도 꼭 두 통씩 쓴다. 한 통은 보내고 남은 한 통은 보관한다. 중국 지식인들은 스스로 하는 일의 역사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런 기록문화는 뿌리가 깊다. 송나라 때 이미 중국 한 나라의 출판도서 양이 전 세계 출판 규모를 앞질렀다. 한자는 소리글자인 한글과 달리 뜻이 풍부하고 다채롭다. 이런 한자문화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사대주의도 아무것도 아니다.

 -현장 공부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명=자료만 들여다봐서는 실제 상황을 알 수 없다. 나는 사건만 생기면 중국을 찾았다. 천안문 사태 때는 목요일 학교 수업 끝나면 금요일 오전 비행기로 대만이나 홍콩을 찾았다. 천안문 사태 정도로 중국 정부가 끄떡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88년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장경국) 총통이 사망했을 때도 어떤 변화가 올까 궁금해 대만에서 6개월을 지냈다.

15일 오후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와 김언호 한길사 대표 인터뷰를 동영상에 담았습니다. 스마트폰에서 QR코드를 화면 중앙 네모창에 맞추면 동영상이 뜹니다.

 -한마디로 『삼국지』 같은 재미인가.

 ▶언=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도자는 어때야 하나, 이런 메시지가 담길 테지만 처세서보다 경륜(經綸)에 관한 책이 될 것이다. 책은 국제경쟁력도 있다고 본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번역해 소개할 생각이다.

 ▶명=중국인들은 인간사를 단선적으로 보지 않는다. 가령 장제스는 성병을 부인에게 옮겼고 대문호 루쉰(魯迅·노신)도 제수가 목욕하는 걸 훔쳐보다가 싸움이 난 적 있다. 중국인들은 이런 오점을 한 사람의 업적과 분리해서 보는 것 같다. 중국 사회, 중국인의 다양성을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김명호=경상대·건국대 중문과를 거쳐 현재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2년 당시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 뉴스를 접하고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중국 연구에 천착했다. 중국 전문서점인 싼롄(三聯)서점의 서울점인 ‘서울삼련’을 2000년 무렵까지 10여 년간 경영하며 수많은 중국 자료·사진을 모았다. 현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숱하게 발품을 팔며 중국을 공부했다.

◆김언호=1975년 동아일보 기자에서 해직된 후 76년 출판사 한길사를 차렸다. 발간 일주일 만에 필화사건에 휘말린 고(故) 이영희 교수의 『우상과 이성』(77년), 『해방전후사의 인식』(79년) 등을 펴내며 인문·사회과학 출판에 주력해 왔다.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인 마을 조성을 주도했다.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을 지냈다. 한국·중국·일본·대만·홍콩 등5개국 출판사들과 동아시아 인문서 100권 출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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