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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용접공이 이룬 물탱크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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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생명이라면 물탱크는 생명을 담는 그릇이다. 적어도 이기영 대표에게는 그렇다. 그는 녹슬지 않는 열정으로 녹슬지 않는 물탱크를 개발했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오래가는 물탱크를 만들겠다며 탱크처럼 진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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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S 물탱크 앞에 선 동명산업 이기영 사장.

월간중앙 열아홉의 용접공이 있었다. 이른 나이에 고향 정읍을 떠나 산업전선에 뛰어든 그에게 하나의 꿈이 있었다. 기술을 배우겠다는 꿈이다. 기술만 배울 수 있다면 섭씨 수천 도의 불똥이 튀어 장갑 속으로 들어와도, 실수할 때마다 고참들이 망치로 머리를 쥐어박아도 참아낼 만했다.

중소기업 >> 녹슬지 않는 물탱크로 세계로 진격하는 동명산업

그렇게 배운 용접 기술은 청년을 물탱크 기술자로 만들어주었고, 청년은 세계 최고의 물탱크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20년 후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물탱크 전문가이자 연매출 80억원대 회사의 CEO가 되었다. 동명산업의 이기영(47) 대표다.
그가 용접에서 배운 노하우는 아이러니하게도 20년 용접의 한계를 뛰어넘은 차세대 물탱크 개발로 이어졌다. 용접식 물탱크의 단점을 극복한 물탱크다.

기존 용접식 사각 스테인리스 물탱크는 값이 비싸고 용접부와 재질이 부식되는 문제가 있었다. 염소가스 때문에 용접 부위에 녹이 슬거나 환경호르몬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이 대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녹슬지 않는’ 물탱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05년 국내 최초로 합성수지를 이용한 볼트조립식 PES(Polyethylene Double Steel) 물탱크를 개발한 것이다.

용접의 역설로 녹슬지 않게
기존 물탱크는 용접식이어서 수명이 2~3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명산업이 개발한 볼트조립식 PES 물탱크는 관리만 잘하면 반영구적이다. PES 물탱크는 폴리에틸렌(PE)을 진공으로 성형해 만든 볼트조립식 물탱크다.

내부는 PE,외부는 스테인리스 또는 아연강관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폴리우레탄폼을 보온재로 넣어 3중 구조로 만들었다. 물이 직접적으로 닿는 부분인 안쪽에 PE 재질을 사용해 기존 물탱크 벽에 물때와 장기간 물을 담아두는 데서 오는 재질 변형을 최소화했다. 외부충격이나 장기간 옥외 노출에 따른 변형을 최소화하려고 재질 변형이 적은 친환경 소재인 스테인리스 재질을 이용했다. 부식이 없어 해수나 지하수 탱크로 최적이며 폴리우레탄폼 보온재 덕분에 영하 80℃에도 동파 걱정이 없다. 약품에 침식되지 않으며 수질오염을 일으키지 않아 식수 공급에도 적합하다.

PES 물탱크의 우수성은 이뿐이 아니다. 별도의 도금이나 도장이 필요하지 않아 경제성과 생산성이 뛰어나다. 기존 물탱크와 달리 외부에 H빔을 설치했고, 높은 수압도 견뎌낸다. 탱크 내부에 지지대가 없는 만큼 공간이 넓어 청소와 유지관리도 쉽다. 심지어 지진에도 끄떡없다. 종래의 조립식 물탱크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직접 설치되어 지진같이 지면에서 발생되는 진동이 탱크 본체로 전달돼 패널이 분리되는 위험이 있었다. PES 물탱크는 진동완충장치를 설치해 내구력을 유지하고 계면박리를 방지했다. 설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효과도 있다. 단위패널과 보강부재의 체결구조를 간소화하고 작업능률을 높여 그만큼 설치단가를 줄였다.

동명산업은 국내 물탱크 제조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공로로 2006년 ‘베스트 코리아 어워드(The Best Korea Awards)’ 대상을 받았다. 동명산업은 이 제품으로 국내 물탱크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내년 2000억원대로 커지는 국내 물탱크 시장에서 4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동명산업은 볼트조립식 PES 물탱크의 국내 특허는 물론이고 미국·일본·중국 등 해외 특허도 출원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다. 이 대표는 이미 기술력을 인정받은 만큼 해외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한다.
경기도 안성에 본사와 공장을 둔 동명산업은 1998년 설립됐다. 현재 PES 물탱크, STS(스테인리스) 물탱크, 온수가열기, 열교환기 등을 개발·생산하고, 전국 5개 대리점을 통해 유통·운영하는 유망한 강소기업이다. 부지 2500평에 연건평 850평 규모의 5개 공장동으로 업계 최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자랑한다.

동명산업의 물탱크는 규모에서도 독보적이다. 최대 6m 높이에 물을 5000t까지 저장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탱크 전체를 일체형 패널로 만들어 한번 설치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기계화 생산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 품질도 일정하게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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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예산군청 삽교농공단지 조성공장 현장.

동명산업은 획기적인 제품 개발에 성공하고도 초기에는 인지도가 낮아 시공 실적이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조립식 PES 물탱크의 품질과 성능이 차츰 알려지면서 주문량이 늘기 시작했다. 개발 초기에 눈여겨보지 않던 대형 건설사들도 기존 제품보다 품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은 최고 40% 정도 싸다는 사실에 잇달아 채택했다. 늘어나는 수주 물량을 소화하려고 직원을 계속 충원해 현재 40여 명으로 늘었다.

물탱크에서 추락, 목발 투혼
동명산업의 물탱크는 서울 상암동 KBS미디어센터에 330t짜리 7개 조가 시공됐으며 전남 순천병원, 명화공업 아산공장, 강원경찰청, 군부대 등 관공서와 공장뿐 아니라 의정부 그랜드아파트, 역곡동 보람아파트 등 아파트단지 등에도 시공됐다.

물탱크는 아파트·빌딩·호텔·병원·관공서 등에 없어서는 안 될 설비다. 이 대표의 물탱크 철학은 이렇다.
“사람에게 물이 생명이듯 물탱크는 건물의 생명입니다. 같은 물이라도 어떤 곳에 어떻게 담아 보관하느냐에 따라 수질이 결정됩니다. 식수와 소방용수 등을 안전하고 오랫동안 저장하는 물탱크 기술은 계속 진화합니다. 누가 먼저 첨단기술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대표는 27년간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볼트조립식 PES 물탱크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창업 이래 해마다 매출의 7%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투입하는 등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투자해온 노력이 마침내 빛을 본 것이다.

동명산업은 현재 물탱크 관련 지식재산권(특허)만 20여 건을 획득했고 그것을 적용해 해마다 신제품을 선보인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기술개발 투자를 더욱 늘릴 생각이다.
“기상이변과 가뭄 등으로 물탱크의 역할이 갈수록 커집니다. 물탱크는 단순히 물을 담아두는 기능을 넘어 어떻게 하면 더욱 물을 오랜 시간 안전하게 보관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용접공으로 출발해 탱크 조립을 익히고 지금까지 업으로 삼다 보니 재질에 따른 문제점과 보완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에 도전해왔습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일하며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노력하면 반드시 성과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표는 새벽형 인간이다. 직원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한다. 새벽까지 연구하다가 사원기숙사에서 눈을 붙이는 날도 많다.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는 400km가 넘는다. 20년 이상 물탱크 설계·용접·제작 등 온갖 일을 섭렵하며 잔뼈가 굵은 그는 1998년 동명산업을 설립한 이래 한시도 쉬지 않고 현장에서 연구했다.

한번은 물탱크 안을 들여다보다 중심을 잃어 4m 아래 탱크 속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 사고로 두 다리가 부러졌지만 그는 병원에 누워 있지 않았다. 며칠 만에 깁스한 채 목발을 짚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물탱크에서 나는 소음만 들어도 어디가 잘못됐는지 찾아낼 정도로 박사가 되었다.

빗물탱크에 미래가 있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을 보면서 20여 년 전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동명산업은 저만의 회사가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하는 모두의 회사입니다. 저는 직원들이 최고가 되도록 안내할 뿐입니다.”
이 대표는 제품을 개발하고 제작해 시판하는 전 과정을 직원과 더불어 한다. PES 물탱크도 직원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동명산업이 지금처럼 성장한 원동력은 직원들의 힘이었습니다. 젊은 직원들에게 제가 익힌 기술을 모두 전해주고 싶습니다. 기술과 함께 굴하지 않는 열정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빗물에 주목한다. 앞으로 빗물을 어떻게 보관하고 안전하게 수질을 유지하면서 수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사활을 걸었다.
“세계는 공해에 따른 가뭄·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물 사용량은 증가해 수자원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큽니다. 빗물을 저장하고 활용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대안입니다. 지방의 물 부족을 메워주고, 산업·생활·농업용수에도 활용할 수 있는 빗물저장탱크에서 기술혁신을 이루겠습니다.”

지금까지 이 대표의 선견지명은 맞아떨어졌다. 빗물저장탱크 시장을 보는 그의 혜안도 머지않아 입증될 것으로 보인다. 동명산업이 개발한 빗물저장탱크는 음용수용으로 적합한 수도용 탱크로 이미 평가를 받았다. 2009년 세계환경기념의 날에는 ‘제2회 물과 건강포럼’ 탱크 기자재부문 발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개정 수도법에 따라 실시한 56가지 시험분석에서 최적합성의 제품임을 증명했다. 이 대표는 독창적 친환경 마인드로 빗물저장탱크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 대표의 목표는 원대하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시장을 석권한다는 목표로 해외시장에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 명품 PES 물탱크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이유다. 현재 카자흐스탄·리비아·러시아·베트남·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출상담을 진행 중이며 이에 대비해 생산라인을 증설, 완전 가동하고 있다. K마크 인증, 조달청 3자 단가 우수제품으로 선정된 이후 관공서와 국방부 납품 비중도 높이고 있다.

“국내 최고 품질의 탱크를 개발한 만큼 세계적인 물탱크 전문 생산기업으로 키우는 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이 대표는 올해 위생적·영구적·경제적 친환경 소재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독보적인 물탱크를 개발한다는 각오다. 이를 통해 내년에는 매출을 80억원대에서 150억원대로 끌어올리겠다고 자신한다.

이 대표는 제조뿐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차별화 전략을 구사한다. 애프터서비스(AS) 신청 시 24시간 내 신속한 처리를 원칙으로 하는 등 대고객만족 사후관리에도 철저하다. 그간 중소기업의 허점으로 지적된 AS문제를 해소해 경쟁사와 확실한 차별화를 이뤘다.

2009년 초, 강원도 태백은 극심한 가뭄으로 지역 주민들은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다. 가정에서는 빨래나 취사 등 기본적인 것도 할 수 없었고, 학교에서는 급식조차 불가능했다. 예년에 비해 절반도 못 미친 강수량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바로 그때 동명산업이 물탱크를 몰고 갔다. 태백공고·태백미래학교·장성여고 등 다섯 곳에 7000만원 상당의 물탱크를 기증했다. 동명산업은 정기적으로 성금을 기부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글 이임광 칼럼니스트 [llkhkb@yahoo.co.kr]
사진 오상민 월간중앙 사진기자 [o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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