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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찾아 한국 온 난민 3260명, 여전히 고단한 삶...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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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16면

“삶은 긴 여정이다. 여정도, 목적지도 없다. 하지만 각각의 단계에서 나는 난관에 봉착한다(La vie est un long voyage. Il n’y a aucun parcours, aucune destination. J’aborde des difficults tape).”줄리엣이 자신이 찍은 사진에 적어 넣은 구절이다. 국내에 있는 3260명의 난민들이 겪는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20일은 유엔 난민의 날이다. 유엔이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난민협약)’을 정한 지는 올해로 60주년이 됐다. 한국 정부는 1992년 이 협약에 가입했다. 올해로 20년째다. 한국은 2000년 2월 4일 유엔 난민협약 집행이사회의 55번째 이사국이 됐다.

유엔 난민협약 60주년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난민들은 한국의 발전된 경제상과 민주화 과정을 동경해 한국행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에 머무르는 난민들은 열악한 의료·교육·생계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지난해 난민에게 국적을 부여해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감탄했을 정도”라며 자신하는 법무부의 입장과는 사뭇 다른 현실이 ‘사실’로 다가온다.

율리아(28·가명)의 조국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지난해 내전이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이 나라의 곳곳에선 남은 반군들이 벌이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내전으로 희생된 사람이 500만 명이 넘고, 매년 40만 명의 여성이 성폭행 피해를 보는 ‘생지옥’이다.시민단체 대변인 출신인 율리아는 지난해 한국에 입국했다. 그녀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군부대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 등 탄압을 받다가 야당의 도움으로 탈출한 것이다. 현재 난민심사를 받고 있다.

율리아는 올해 초 아들을 낳았다. ‘난민 선배’ 격인 벤(34·가명)과 결혼해 낳은 아이다. NGO에서 활동하던 벤은 정치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학대를 당하다가 2006년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벤이 낸 난민 신청은 기각됐다. 불법체류 상태인 것이다.두 사람은 아이를 안고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이도 난민 신청서를 쓰라”는 말과 함께 종이 쪽지 한 장만 덩그러니 돌아왔다. 미국 같았다면 아이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부모에게 체류 자격과 양육비를 부여했을 법한 케이스였다.

(왼쪽)포토보이스 김지하 강사와 작품을 검토하는 난민. (오른쪽)사진전을 관람하는 한 난민.

율리아는 아들의 사진을 찍어 저울 사진과 합성했다. 난민 신청서를 안고 있는 아들의 모습은 태어나자마자 난민 신청서를 써야 하는 현실을 나타냈다. 저울은 한국의 법을 상징한다. 배경에는 좌절한 채 울고 있는 남편 벤의 모습을 담았다. 율리아 부부를 지원하는 장민정 난민인권센터 팀장은 “속인주의인 한국의 국적 제도를 감안하더라도 아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난민 신청서 한 장뿐인 현실은 이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말했다.

난민 신청자들의 대다수는 생계의 위협에 직면한다. 법무부에 난민을 신청한 뒤 취업을 할 수 없는 데다, 난민 인정을 받더라도 당장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전부터 난민 신청을 한 뒤 1년이 지난 사람에 대해서만 취업허가가 내려진 것이 전부다. 취업허가를 받으면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지만 대개 월 100만원 정도를 받고 단순 노동을 한다.
지난해 법무부에서 실시한 ‘한국 체류 난민 등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응답자인 난민의 3분의 2가 경제적 곤란으로 인한 결식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결식 경험자의 20%가 하루 2끼 이상을 거른 경험이 있었다.

난민은 아파도 참아야 한다. 버마 민족주의동맹(NLD) 한국지부 회장을 맡고 있는 내툰나잉(42·미얀마)이 “다행히 난민 인정을 받을 때까지 아프지 않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유다. 난민 인정 판정을 받을 때까지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94년 한국에 들어온 내툰나잉은 2003년 난민 인정 판정을 받았다. 난민 인정자의 경우 내국인과 같은 지역·직장건강보험이 제공되고, 인도적 체류 허가자(난민 인정은 못 받았지만 출신국의 인권 침해 상황으로 인도적인 체류를 허가하는 것)의 경우 취업 후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내툰나잉은 최근 NLD 한국지부에서 활동하는 한 난민 신청자의 사례를 들려줬다.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그를 위해 한 번에 14만원 하는 투석비를 회원들이 갹출해 내야 했다고 한다. 주 3회 치료를 감안하면 20여 명의 회원이 내기에는 큰 부담이다. 난민신청자의 경우 병원 이용률이 28.9%에 불과하다.

의료 NGO 메디피스 등 일부 시민단체에서 난민들을 위해 비상 상비약과 영양제, 건강수첩을 제공하는 등 의료 지원을 하고 있지만, 난민 신청자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메디피스 양진아 팀장은 “난민 신청자의 생존을 위한 단 한 명의 전담 의사도 없는 실정”이라며 “정부에서 난민들을 위한 의료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내에 난민 업무를 담당할 전담자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초대 법무부 국적난민과장으로 5년간 일한 차규근 변호사(연수원 24기)는 “6명의 직원이 결혼이민자 등 귀화자의 국적 업무를 보는 틈틈이 난민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적극적인 난민 심사와 지원을 하고 싶어도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부처의 인원을 늘리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법무부 측은 차선책으로 전국 지역에 흩어져 있는 난민 관리 인력을 서울출입국사무소로 배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에 있는 난민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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