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미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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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첫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번 겨울 칼바람이 쌩쌩불었던 연극계도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탈 서울을 선언하고 지방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극단들의 봄맞이 표정을 시리즈로 알아본다.

서울 근교의 장흥유원지를 관통해 기산저수지 방향으로 10㎞를 달리면 차도 왼쪽으로 미추산방과 마주친다.

행정명칭은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홍죽리. 양주는 봉산탈춤과 함께 우리 나라 양대 탈춤인 별산대 놀이가 탄생한 유서깊은 곳이다. 이곳 야트막한 언덕에 3층짜리 철골-유리 건물이 보인다. 5백년 된 미루나무와 두살배기 진돗개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건물로 들어섰다. 2백여 좌석을 갖춘 1층 극장에선 미추연극학교 2기생 10여 명이 27일 공연예정인 졸업작품 '산불'(차범석 작)을 연습하느라 온몸에 구슬땀이 흥건하다.

1999년 한해 동안 닦은 연기실력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다.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로 뭉친 미래의 기대주들이다.

2층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가을에 호평받은 '춘궁기'(박수진 작)의 앙코르 공연 연습이 한창이다. 문예진흥원의 우수 레퍼토리로 선정돼 다음달 17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인다.

이밖에도 단원들은 건물 바깥에 마련된 아틀리에서 사물놀이 장단을 익히며 보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추구하는 극단의 지향점에 걸맞게 우리 가락을 체득했다. 땀 흘린 겨울만이 화사한 봄을 약속하기에….

미추산방은 1년 내내 분주하다. 배우, 스태프, 국악관현악단을 합쳐 70여명의 식구들이 항상 북적거린다. 건물 2층에 딸린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협동심도 키운다.

겨울에는 김장을 담고 봄에는 상추도 심는다. 남녀 구분 없이 식사당번을 정해 미추 출신 남성배우의 요리실력은 웬만한 주부를 뺨친다.

극단 미추가 대학로를 떠나 이곳 양주에 정착한 때는 96년 3월. 손진책 대표가 서울의 아파트를 팔아 땅을 구입하고 지난 4년 동안 단원들이 합심해 산방의 모양새를 꾸며나갔다.

수익금이 조금씩 생길 때마다 시설을 보완해 지금은 커피 자동판매기와 공중전화기도 갖춘 번듯한 공간으로 키워놓았다.

손대표가 입을 연다.

"연기의 기본은 자연입니다. 자연친화와 자연사랑, 나아가 생명존중이 연극의 바탕이죠. 그래서 과감하게 번잡한 도시에서 탈출했습니다.

우리 단원들도 자연과 함께 살다 보니 너무나 착해졌어요. 물론 경제적 요인도 있었죠. 서울에서 4백60여평의 터전을 어떻게 마련하겠어요."

극단 미추의 올해는 의미가 크다. 미추 하면 연상되는 마당놀이가 오는 10월 20주년을 맞는다.

전통적 연극요소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다는 목표로 시작했던 마당놀이가 약관(弱冠)의 성년으로 성장한 것. 1년에 20만명 가까이 즐기는 문화상품으로 뿌리내렸다.

또한 1년에 전국의 40개 중, 고교를 도는 순회공연이 8년째로 접어든다. '지킴이' '남사당의 하늘' 등 자체 레퍼토리 전국 순회공연도 어김없이 준비 중이다. 손대표의 소망인 미추연극학교 교사(校舍)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아쉽다면 산방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것. 4년 전엔 벽지였으나 지금은 주변에 음식점. 여관이 들어서 이른바 '자연의 미학'이 사라지고 있다. 인근 장흥유원지의 '놀자판 파워'가 이곳까지 밀려든 것이다.

"소비문화는 정말 대단해요. 하지만 자연.생명을 존중하는 연극정신이 변하면 안 되겠지요. " 손대표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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