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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글리벡, 목숨 많이 구했지만 너무 비싼 약값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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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한국에 도입됐다.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은 환자에겐 생명을 선물하고, 의학계엔 새로운 암 정복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올해는 표적항암제 국내 도입 10주년이 되는 해다. 글리벡을 공급하는 한국노바티스로서는 샴페인이라도 터트려야 하지만 조용히 넘어가길 바란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약 복용만으로 백혈병 치료의 가능성을 연 글리벡이지만 약값논란은 아킬레스건이다. 지난해 글리벡은 한국에서만 8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약값의 95%는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빠져나간다.

 글리벡은 국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약 중 세 번째로 많이 처방된다. 그러나 이 약을 복용하는 환자 수는 3000여 명이다. 환자는 적은데 높은 매출을 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10년 전 국내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는 500여 명이었다. 당시 글리벡 약값은 희귀질환이라는 점이 반영돼 높게 책정됐다. 하지만 현재 환자 수는 10년 전보다 6배 증가했다. 이런 이유로 시민단체와 환우회는 정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글리벡의 약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직권으로 글리벡 약값의 14% 인하를 결정했었다. 하지만 한국노바티스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결국 글리벡 도입 때부터 시작된 약값 논란은 10년째 진행 중이다. 글리벡 약값 인하 결정은 정부의 첫 직권인하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이 결정이 번복되면 복지부의 약값 결정 정책과 권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 회사는 기존 100㎎ 글리벡에 이어 고함량인 400㎎ 제품의 국내 출시를 미루고 있다.약사법 상 고함량이 출시되면 저함량 가격은 약 37% 인하된다. 제약회사는 인류의 건강권을 위해 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허를 내세우기보다 환자의 생명과 공공의 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주길 바란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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