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호텔 유리창 통해 은밀한 남녀 들여다보는 여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눈이 내린 어느 토요일 밤,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호텔. 맞은편 건물 유리창을 통해 호텔 내 66개 방 안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혼자서 햄버거를 먹는 뚱뚱한 남자, 흉기로 상대를 찌르려는 사람, 천장에 줄을 매달아 자살하려는 여인…. 재독 사진작가 김인숙(41)씨는 작품 ‘토요일 밤’읕 통해 호텔 내부의 은밀한 풍경들을 그려냈다.

김씨는 독일의 10년 치 신문을 스크랩했다. 인간의 고독이나 이기심 때문에 일어난 사건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재현해 촬영한 뒤 합성했다. 김씨와 그의 남편, 주위 사람들이 모델로 출연했다. 작품 완성까지 3년이 걸릴 만큼 품이 많이 들었다. 김씨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현대인들은 시간적 여유가 점점 많아지는 반면, 그 시간 때문에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또다른 작품인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은 뉴욕타임스(NYT)가 의뢰해 제작한 것이다. 미술관 안 관람객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인 ‘발터크놀’은 사무실·공장 등이 입주한 4층 건물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김씨가 유리 건축물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유리의 이중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섯 겹씩 문을 걸어 잠그고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싶어하면서 유리창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이상 심리는 뭘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사진 중에는 외설처럼 보이는 것들도 꽤 많다. 왜 이렇게 강하고 자극적인 장면을 찍을까? 김씨는 “이게 다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답한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제1회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 일우스페이스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는 플라토(PLATEAU)에서 7월10일까지 계속된다. 'Space study'란 이름으로 13명의 다른 작가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심영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