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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에 맡긴 돈을 찾으러 몰려드는 현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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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호 24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의 한 섬을 점령한 독일군은 도로를 닦으라는 명령을 듣지 않는 주민들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독일군은 이 섬의 화폐로 쓰이는 맷돌에다 압류한다는 표시를 했다. 갑자기 가난해진 주민들이 열심히 길을 만든 후에야 압류 표시를 지워줬다. 다시 부자가 된 주민들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쓴 돈의 이야기에 나오는 유명한 에피소드다.

알기 쉬운 경제용어 뱅크런(bank run) 

맷돌 대신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지폐를 기초로 돌아가는 것이 현대의 화폐경제다. 최근의 디지털 경제에서는 신용카드를 활용해 은행 계좌에 있는 잔액 숫자만으로 대부분의 지불을 마칠 수 있다. 지폐건 신용카드건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는 맷돌 화폐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런 금융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가 뱅크런이다. 뱅크런은 한꺼번에 많은 예금을 인출하는 상황을 말한다. 금융회사는 고객이 맡긴 돈의 일부를 지급준비금으로 중앙은행에 예치하고 나머지를 대출이나 투자에 쓴다. 고객들이 몰려와서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대공황이다. 1929년 주식시장의 붕괴로 일부 은행이 파산하자 불안해진 고객들이 앞다투어 다른 은행에 맡긴 돈을 찾으러 들었다. 네 차례 반복된 대규모 뱅크런으로 은행들이 잇따라 파산하고, 이에 따라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불황이 더 깊어지는 악순환이 33년까지 이어졌다.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창설해 일정금액 이하의 예금에 대해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뱅크런 현상이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프라임개발을 검찰에 고발하자 사흘 만에 프라임저축은행에서 1170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우리나라는 1995년 예금자보호법을 제정해 고객 1인당 5000만원까지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를 본 고객들이 예금을 빼나간 것이다. 정부가 저축은행 고객들을 안심시키면서 10일을 고비로 예금 인출이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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