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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갯내 사람내 어울린 서울 속의 포구, 노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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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이른 오전 시간 노량진수산시장은 중개인과 상인으로 북적댄다. 상대적으로 일반 손님이 많지 않아 횟감 사기에 되레 좋은 때다.


오전 1시.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은 낮보다 환하고 시끄러웠다. 이때부터 시장은 경매 소리로 밤을 새운다. 갯물 넘실대는 콘크리트 바닥이 전국에서 올라온 플라스틱상자로 가득하다. 저 상자 안에서 한때 대양을 유영했던 등 푸른 생선이 횟감이 되기 직전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을 것이다. 경매사의 속어가 주문을 외듯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이를 받아 치는 중개인의 손짓과 땀내가 더해져 시장은 밤새 열기로 후끈거린다. 1971년 개장한 노량진수산시장은 수도권 최대의 어물전이다. 수도권에서 거래되는 수산물의 45%를 노량진수산시장이 차지한다(금액 기준).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 취재기자 세 명이 이틀씩 꼬박 6일을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출근했다. 봄 떠나보내고 여름 채비에 바쁜 서울 최대의 어물전 풍경을 중계한다.

글=김영주·최성근·이소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여름이 오기 전에 먹어야 하는 해산물에 관해

경매가 진행 중인 노량진시장 풍경.

노량진수산시장은 언제 가도 횟감으로 풍성하다. 양식 덕분이라고 해도 수족관을 채우는 주역들은 철에 따라 교체된다. 이를테면 3월 대게철이 지나면 4월 주꾸미철이 오고 5월엔 꽃게가 절정을 맞는다. 어물전 상인이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꽃돔 가고 나면 오농육숭이요, 복날에 갯장어 안 먹으면 아쉽고 가을 전어, 겨울 삼치.”

 벚꽃 필 때는 참돔이 좋고, 오월에는 농어, 유월에는 숭어가 제철이고, 한여름에는 장어로 보양하고, 추석 즈음엔 전어가 제철이요, 삼치는 찬바람 날 때가 제맛이라는 뜻이다.

 6월 첫째 주 노량진수산시장은, 비유하자면 ‘정권 교체기’였다. 봄을 대표하는 어종이 들어가고 여름을 기다리는 참이었다. 도다리가 끝물이었고 꽃게가 금어기를 코앞에 두고 한창 장이 뜨거웠다. 제철을 맞아 살이 잔뜩 오른 숭어와 간재미가 꽃게 다음으로 흔했다. 농어·병어 등 여름 생선은 아직 드물었다.

 6월 초순 어물전은 생각보다 한가한 모습이었다. ‘장터식당’의 채수홍씨는 “1년 중에서 4∼5월과 10월이 손님이 가장 많고 7∼8월은 한여름이어서 가장 적다”며 “예년보다 봄이 늦게 왔는데 여름은 또 일찍 오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보리숭어라고 불리는 가숭어. 알밴 숭어가 많다.

 시장 상인은 지난해보다 손님이 20%는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성물질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시장 입구에 24시간 방사능 측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시장 홍보담당 김덕호씨는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가 구비돼 있어 손님이 원하면 언제든지 바로 측정할 수 있다”며 “서울시에서도 일주일에 두 번씩 나와 검사한다”고 안심시켰다. 생태나 도미는 일본에서 대부분 수입해 왔는데, 요즘엔 어종 불문하고 일본산 자체가 사라졌다.

 지금 노량진에는 자연산 광어가 양식한 것보다 싸다. 싸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산란을 마친 봄 광어는 살이 무르고 퍽퍽해 맛이 떨어진다. 반면 양식 광어는 사료를 먹여 키워 연중 맛이 일정한 편이다. 자연산 광어는 배가 하얗지만 양식 광어는 배에 얼룩이 있다.

 경매사 김현수씨는 “16일 꽃게 금어기가 시작된다”며 “이때 꽃게와 함께 광어·도다리도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지금부터는 여름 생선인 병어와 농어가 본격적으로 올라온다는 얘기다. 방사능 때문에 생선회 피하다 보면 여름을 맞는다. 여름엔 식중독부터 비브리오 패혈증까지 걱정할 게 더 많다. 여름이 오기 전 생선회를 먹어야 하는 이유다.

#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횟감 고르기

겨울에 잡아 염장해 둔 자반고등어.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추권영(45)씨를 만났다. 서울 합정동에서 작은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그는 일주일에 여섯 차례 노량진시장에 나온다고 했다. 그를 따라다니며 노량진 쇼핑 노하우를 배웠다.

 그는 장 보는 라인부터 달랐다. 가장 붐비는 시장 안쪽 라인(노량진 방면)이 아니라 경매장 가까운 곳에 있는 라인(여의도 방향)으로 갔다. 추씨처럼 일식집 주방장이나 소매상인이 이용하는 곳이다. 라인 기둥에 ‘1-2’부터 ‘13-2’까지 번호판이 있다.

 “장사꾼은 다 여기로 와요. 가격은 소매와 도매의 중간쯤 돼요. 일반인도 살 수 있지만 단골보다는 조금 비쌀 거예요.”

 30㎝급 감성돔이 모여 있는 수족관 앞에서 그가 걸음을 멈춘다. 횟감으로 쓸 모양이다. 그는 돔의 배때기를 일일이 눌러 본 뒤 한 마리를 담았다. “육질이 좋은 놈은 배때기가 딴딴해요. 그런 놈이 싱싱하고요.”

갈매기조개

 상태 안 좋은 생선이 시장 바닥에서 죽어 간다. 아주머니들이 생선이 죽기 전에 피를 뽑느라 부산하다. 그대로 두면 피멍이 들기 때문이다. 아가미 뒷부분과 꼬리에 칼집을 넣어 피를 뽑은 횟감을 ‘찍어바리’라고 부른다. 이날 찍어바리는 광어와 숭어가 대부분이었는데, 초밥집이나 싼 횟집에서 대부분 소화한단다. 찍어바리 광어의 소매가는 1㎏ 8000원이었다. 이날 경매에 나온 양식 광어 도매가가 7000∼1만500원(1㎏)이었으니 확실히 싼 편이었다.

 어물전 좌판에는 병어·황석어·멸치가 많았다. 병어는 아직 씨알이 작았다. 16∼17마리가 담긴 한 박스가 2만2000원이었다. 씨알이 작은 건 구이로는 못 쓰고 ‘세꼬시’나 ‘뼈꼬시’로 쓴다. ‘횟감용’이라는 추자도산 멸치는 5㎏ 박스에 2만2000원이었다. 그러나 추씨는 “멸치도 끝물이라 물이 좋지 않다”며 돌아섰다.

 ‘13-2’ 이정표가 끝나는 지점에 자반고등어집이 있다. 추씨는 “노량진에서 제일 비싼 자반고등어를 파는 집”이라며 “그래도 비싼 값을 한다”고 소개했다. 고등어는 한겨울이 제철이다. 요즘엔 맛도 덜하고 많이 나지도 않는다. 자반고등어집 주인은 “이번 겨울 부산에서 잡은 고등어를 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물전이 끝나는 지점부터 패류 좌판이 시작한다. 새조개처럼 생겼는데 색깔이 샛노란 조갯살이 보였다. 갈매기조개다. 추씨는 “새조개는 겨울이 지나면 독성 때문에 못 먹지만 갈매기조개는 그렇지 않다”며 “맛이 달아 회로 먹어도 좋다”고 추천했다. 껍데기를 깐 갈매기조개 열댓 개 한 봉지가 1만8000원. 소매일 때는 조금 더 받는단다.

노량진수산시장은 …

당일 수산물 시세는 경매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6월 3일 넙치의 평균 낙찰가는 1kg에 9000원. 그러니까 2.5kg짜리 넙치 한 마리 가격이 2만2500원인 것이다. 중개인을 통해 넘어온 수산물은 도매·소매 상인에게 넘어가고 이것을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다. 경매는 오전 1시부터 패류·고급선어(오전 1시30분)·고급활어(오전 3시)·냉동부류(오전 3시30분) 순으로 진행된다. 시세는 현장 전광판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낙찰가를 알고 있으면 상인과 흥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3일 오전 주요 수산물의 kg당 가격은 도다리 1만1800원, 참돔 1만7000원, 농어 1만3500원, 민어 2만2000원 등이었다.

 수산물시장에서 횟감을 구입한 후 시장 내 음식점에서 바로 먹을 수 있다. 지하 1층과 2층에 10여 군데 음식점이 있으며, 초장 등 상차림 반찬을 제공하고 1인당 3000원을 받는다. 영업시간은 대개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황제횟양념집·서울식당은 24시간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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