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 스컬리를 그리워 함

중앙일보

입력

틀림없이 우리 엄마가 〈가요무대〉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계실 시간에,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지 못해 리모콘만 고생시키고 있다 보면 〈X파일〉 생각이 간절해진다.

〈X파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매력적인 등장인물들도 열광적인 인기에 큰 몫을 했다. 특히 스컬리는 아주 독특한 인물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여자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스컬리는 지적이고 냉철하고 논리적이고 독립적이다. 보통 남자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텔레비전 안에서도 현실에서도 보기 드문, 권위있는 전문가인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문제 해결에서도 보조적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 좋아하던 〈미녀 삼총사〉에서 여자들은 첩보원인지 형사인지로 나왔지만 지금 기억나는 건 잘 빠진 몸매를 자랑하며 또는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던 장면이다. 좀 더 자란 후 좋아하던 〈미녀 첩보원〉인가 그 비슷한 제목의 외화에서도 여자는 파트너인 잘 생긴 남자 첩보원과 서로 은근히 좋아하는 것으로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스컬리는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무성적인 매력을 부각시키려 한다) 사랑 놀음을 하는 것으로 양념 역할 하는 것에 머무르지도 않았다. 물론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 더듬어 올라가야 하는 그 유명했던 우리나라의 〈수사반장〉의 역사를 되풀이하지도 않았다. 사건 현장을 뛰어 다니는 형사들과 대조적으로 전화를 받거나 잔심부름만 하던 여자 경찰관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내 기억이 크게 틀리지 않다면.

그런 보조적인 역할이나 남자 주인공의 애인 역할이 아닌 진정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 준 스컬리가 부디 멀더와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나는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회에 멀더와 스컬리의 키스 신이 있다고 하는 실망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스컬리가 어떻게 내 기대를 저버리는지 직접 마지막 회를 보지는 못 했지만 그 몇 주 전에도 (비록 남자의 상상 속에서지만) 스컬리가 옷을 벗는 등 이미 조금씩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X파일〉이 종영하기 전부터 소재가 바닥이 나기 시작하여 재미와 신선함이 떨어질 때가 많았다. 나는 볼 때마다 이제 다시는 안 보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배신감을 느꼈는데도 아직도 재미없는 월요일 밤이면 〈X파일〉이 그리워지는 것은 스컬리가 너무나 참신한, 내가 좋아하는 여자 영웅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맘 붙일 프로그램이 없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웬일인지 모두 팥쥐 같은 못된 부잣집 여자 아이와 캔디 같은 착하고 꿋꿋한 가난한 여자 아이가 나오는 재미없는 드라마만 만들고 있다. 멀더와 스컬리가 없는 틈을 타서 외계인들이 방송국에 있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모두 똑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외계인이 내 목 뒤에 넣어 둔 칩 때문에 내가 재미있는 것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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