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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92> 세계의 왕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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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지난달 29일 영국에서 ‘세기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윌리엄 영국 왕자의 결혼식입니다. 왕자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약혼녀, 마차 퍼레이드, 궁전 발코니에서 첫 키스…. 동화 같은 이들의 결혼식을 20억 세계인이 TV 등으로 지켜봤습니다. 21세기인 지금 세계에는 영국 외에도 왕이나 여왕이 있는 나라가 많습니다. 동화 같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지구촌 군주들의 삶과 왕실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에스더 기자

2006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벨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스웨덴 왕실 가족들이 참석했다. 가운데 사회자 오른편의 앞줄 왼쪽부터 릴리안 공주(국왕의 숙모), 카를 구스타프 16세 국왕, 실비아 왕비, 왕위 계승 서열 1위 빅토리아 공주. [중앙포토]



노르웨이의 하랄드 5세

최초로 평민 아내로 맞아 … 아들은 미혼모와 혼전 동거

노르웨이 하랄드 5세 국왕과 아내 소냐 왕비.

하랄드 5세(74)는 왕세자 시절이던 68년 31세 동갑내기 평민인 소냐 하랄드센과 결혼했다. 노르웨이에서 평민이 왕세자비가 된 건 처음이었다. 평민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왕에게 왕세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 여자가 아니라면 평생 독신으로 살겠습니다.” 왕세자는 당시 유일한 직계 계승자였다. 왕의 마음이 움직였다. 국민도 첫 평민 출신 왕세자비를 반겼다. 왕족의 연애결혼이 드문 시절, 이들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하랄드 5세 국왕은 소냐 왕비와의 사이에서 딸과 아들을 하나씩 뒀다. 모두 평민과 결혼했다. 아들 호콘 왕세자는 미혼모와 혼전 동거 끝에 결혼했다. 메테마리트 왕세자비는 마약상과 동거해 아들을 둔 이로 결혼 당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왕실 폐지론까지 대두했다. 하지만 하랄드 5세는 아들의 사랑을 지켜줬다. 결혼 뒤 이런 논란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사랑하는 두 남녀의 신념 있는 결합이라고 본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국왕은 이후 발간한 자서전에서 아들 부부의 혼전 동거를 허락했다는 사실을 고백해 국민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호콘 왕세자는 결혼해 아들과 딸을 하나씩 낳았다. 왕세자비가 혼전에 낳은 아들도 왕위계승권은 없지만 이들과 가족이 되었다.

스웨덴의 카를 구스타프 16세

실비아 왕비는 통역사 출신 … 72년 뮌헨올림픽서 만나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 사진. 왼쪽부터 실비아 왕비, 카를 구스타프 16세 국왕, 빅토리아 공주, 다니엘 베스틀링 공작, 에바 베스틀링, 올레 베스틀링.

카를 구스타프 16세(65)는 매년 노벨상 시상식을 주재한다. 덕분에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다. 포르셰911을 여러 대 갖고 있는 포르셰 매니어다. 그는 실비아 왕비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만났다. 왕자와 통역사로서다. 왕비는 어머니가 브라질, 아버지가 독일 출신이다. 76년 결혼했다. 왕비의 아버지는 평민 사업가로 왕가와 평민의 만남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는 물에 관심이 많은 환경주의자다. 매년 물에 대한 인식을 높이거나 물과 관련된 연구활동을 많이 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스톡홀름 워터 프라이즈 수상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매년 수상자에게 직접 시상한다. 국왕에겐 난독증(글자를 잘 읽지 못하는 증세)이 있다. 지난해 가수이자 성인용 화보집 모델인 카밀라 헤넨마르크와 불륜을 저질렀으며, 지인들과 불법 스트립 클럽에서 파티를 벌이는 스캔들을 만들기도 했다.

모나코의 알베르 2세

그레이스 켈리의 아들 … 여배우와 숱한 염문

모나코 알베르 2세 대공과 약혼녀 샤를렌 위트스톡.

모나코의 군주 알베르 2세(53)는 할리우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아들이다. 그는 극지방 탐험에 관심이 많다. 2006년 4월 북극점을 정복해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북극을 탐험한 인물이 됐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14억 달러(1조5000억원)로 세계 왕족 가운데 9위다. 재산은 주로 부동산, 앤티크 자동차, 고가 우표에 집중돼 있다. 카지노 등 국영기업 지분도 적지 않다. 모두 700년간 모나코 대공 자리를 유지해 온 그리말디 가문의 재산이다. 아직 미혼인 그는 바람둥이로 유명하다. 배우 브룩 실즈,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 등 세계 유명 모델이나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 최근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수영선수 샤를렌 위트스톡과 교제하고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둘 있다. 모나코에 관광 온 미국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재스민(19)과 아프리카 토고 출신의 에어프랑스 승무원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알렉상드르(8)가 있다. 이들은 정식 혼인을 통해 태어나지 않아 왕위 계승권이 없다.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알베르 2세의 누이인 카롤린 공주, 2위는 카롤린 공주의 장남인 안드레아 카시라기다.

알베르 2세 대공은 모나코를 돈세탁과 탈세의 온상지로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8년 2월 모나코·리히텐슈타인·안도라를 ‘비협조적인 조세회피지역’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들 국가 금융기관에 대해 세금 포탈을 조장하는 비밀주의 관행을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리히텐슈타인의 한스아담 2세

금융업이 핵심 산업 … ‘돈세탁’ 오명도

리히텐슈타인의 실질적인 국가원수 한스 아담 2세와 아내 마리.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끼인 인구 2만5000명의 리히텐슈타인 공국. 89년 즉위한 한스아담 2세(66)가 군주다. 2004년부터 알로이스(43) 왕세자가 대공 지위를 물려받았지만 실질적인 국가원수 지위는 한스아담 2세에게 있다. 왕족의 모국어는 독일어지만, 영어와 프랑스어·이탈리아어를 기본적으로 한다. 작은 나라 군주가 사는 법이다. 리히텐슈타인 국민은 납세 의무가 없다. 왕실이 사업을 해 번 돈으로 국가 예산을 충당하기 때문이다. 알로이스 대공은 국민이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결의라도 하면 “오스트리아로 이주하겠다”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에게 나라를 팔아버리겠다”는 협박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리히텐슈타인은 알프스산맥 한복판의 산악국가로 금융업이 핵심 산업이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전 세계 부자들의 재산을 맡아 숨겨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히텐슈타인의 LGT라는 은행은 사실상 한스아담 2세의 개인 소유다. 원래 왕실 재산을 보관하고 불리는 가족 은행이었는데 돈을 숨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아예 사업 방향을 ‘돈세탁’으로 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한스아담 2세의 개인 재산은 50억 달러(5조4600억원). 세계 군주 가운데 6위, 유럽 군주 가운데는 가장 부자다.

브루나이의 술탄 하지 하사날 볼키아

세계 2번째 부자 군주 … 고급차 수집광

브루나이 술탄 하지 하사날 볼키아.

술탄 하지 하사날 볼키아(65) 브루나이 국왕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돈이 많은 군주다. 2009년 포브스의 왕족 재산 순위에서 태국 푸미폰 국왕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재산 액수는 200억 달러(21조8500억원)다. 그는 자동차와 비행기에 관심이 많다. 2009년 10월 영국 데일리 미러는 볼키아 국왕의 자동차 수집 목록을 공개했다. 531대의 메르세데스 벤츠, 367대의 페라리, 362대의 벤틀리, 185대의 BMW, 177대의 재규어, 160대의 포르셰, 130대의 롤스로이스, 그리고 20대의 람보르기니가 포함돼 있다. 그는 금박 입힌 고급 가구로 장식한 보잉 747-400기도 보유하고 있다. 누룰 이만 섬에 있는 그의 관저는 1788개의 방과 257개의 욕실을 갖춘 초호화 저택이다. 어떠한 법에 구애도 받지 않는 절대군주인 그는 40만 명의 국민에게 무상교육과 무상 의료 혜택을 준다. 이런 씀씀이가 가능한 건 석유 덕분이다. 석유 수입이 왕실과 국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브루나이에선 개인도 기업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단 석유는 모두 국왕 차지다.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1238달러(약 3400만원)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매장된 석유가 고갈돼 감에 따라 왕실과 국왕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앞으로 10년 내에 이 나라의 석유가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를 대체할 만한 산업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볼키아 국왕은 석유 생산량을 대폭 줄이는 방법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왕실 폐지론’ 잠재운 묘약

2005년 11월 15일 아키히토 일왕의 장녀인 사야코 공주(오른쪽)가 도쿄 데이코쿠 호텔에서 결혼식을 마친 뒤 신랑인 구로다 요시키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구촌 왕실에 평민 출신과의 결혼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왕족들이 귀족이나 다른 나라 왕실에서 배우자를 찾던 전통을 깨고 진정한 사랑 찾기에 나선 것이다.

21세기 들어서는 2001년 노르웨이의 호콘 왕세자가 ‘평민과의 결혼’ 테이프를 끊었다.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은 아들을 둔 미혼모였다.

빌헬름 알렉산더 네덜란드 왕세자는 2002년 아르헨티나 출신 평민 여성 막시마와 결혼했다. 막시마 왕세자빈은 아버지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 농업부 장관을 지낸 사실이 알려져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결혼에 성공했다. 스페인 펠리페 왕세자는 2004년 유명 TV 앵커와 결혼해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덴마크 프레데릭 왕세자는 시드니의 술집에서 호주 출신 이혼녀와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일본에서는 천황)의 맏딸인 사야코 공주는 2005년 도쿄도 공무원인 구로다 요시키(黑田慶樹)와 결혼해 공주의 지위를 버리고 평민이 됐다.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일본 전통에 따라 노리노미야(紀宮)라는 왕족 이름 대신 남편의 성에 아명(兒名)을 붙여 구로다 사야코(黑田淸子)가 됐다.

지난해엔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가 자신의 개인 트레이너인 다니엘 베스틀링과 결혼했다. 2002년 교제를 시작한 두 사람은 한때 왕실의 반대로 결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인 카를 구스타프 16세 국왕은 공주의 끈질긴 설득에 결혼을 허락했다. 대신 구스타프 16세는 평민 다니엘을 귀족으로 변신시키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다니엘은 영어·독일어·프랑스 등 외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왕실 역사와 정치학 수업을 받아 교양을 쌓았다. 또 마케팅 회사를 고용해 헤어 스타일과 의상 등을 귀족풍으로 바꿨다.

평민과의 결혼은 왕실로서도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왕실은 평민 출신과의 결혼을 통해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를 얻는다. 왕실에 대한 국민 지지도를 높인 덕분에 일부 국가에선 꾸준히 제기된 왕실 폐지론을 잠재우는 역할도 한다. 극심한 반대 여론에 부닥쳤던 메테마리트 노르웨이 왕세자빈은 결혼 뒤 뉴욕의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극빈층에 소액을 신용대출해 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활발한 자선활동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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