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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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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네팔 카트만두의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힌두교 4대 성지 중 하나다. 파괴의 신 시바를 모신다. 성스러운 ‘어머니 강’인 갠지스의 상류 바그마티 강변에 있다. 여기서는 연일 노천 화장(火葬)이 이뤄진다. 타고 남은 골회(骨灰)를 갠지스에 뿌리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다고 믿는 것이다. 승화된 수장(水葬)이랄까. 강은 자연히 반쯤 탄 장작더미와 불완전 연소된 시체로 가득하게 됐다. 이에 2000년 ‘바그마티의 친구들’이란 환경단체가 조직돼 강변 정화에 나섰다고 한다.

 문무대왕릉은 승화된 수장(水葬)의 대표 격이다. 화장 후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돼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겠다고 지의법사에게 유언해 장사를 지낸 곳이 대왕암이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은 바로 용으로 변한 문무대왕을 부르는 피리다.

 해양민족에 수장은 보편적이다. 폴리네시아에선 사자(死者)를 통나무에 실어 먼 바다에 가라앉힌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내륙지방에서 수장은 ‘관계의 단절’을 뜻한다. 티베트에서는 질병에 걸려 죽은 경우 가죽에 싸 강에 던지는 풍습이 있다. 물에 넣으면 사악한 망령(亡靈)이 인간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믿음에서다.

 그래서일까. 섶에 누워 복수를 꿈꾼 ‘와신(臥薪)’의 주인공 오왕 부차는 자결한 오자서를 말 가죽에 싸 강물에 던진다. 꿈에서도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또한 시묘(侍墓)를 막아 후손과 단절까지 꾀한 셈이 됐다. 그런 부차도 쓸개를 맛보며 복수의 칼을 간 ‘상담(嘗膽)’의 주인공 월왕 구천에게 지고 후회하지만.

 9·11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이 아라비아해에 수장됐다. 묻을 경우 혹시라도 테러리스트의 성지(聖地)가 될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쿠바 산타클라라의 체 게바라의 묘지처럼 말이다. 더불어 ‘테러의 망령’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도록 한 셈인가.

 ‘창랑(滄浪)이 깨끗하면 갓끈을 씻고, 더러우면 발을 씻는다’는 어부의 노래를 뒤로 멱라수에 몸을 던진 굴원을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물고기가 뜯지 못하도록 댓잎에 찹쌀을 쪄 고깃밥으로 던진 것이 ‘종자(粽子)’다. 중국인들이 매년 5월 5일 대통이나 댓잎 종자를 먹는 풍습의 유래다. 또 그를 기려 ‘용주(龍舟)’ 놀이도 생겼다. 그런데 어복(魚腹)에 장사를 지낸 빈 라덴에겐 종자도 용주도 없다. 그저 아픈 기억에 악명(惡名)만 새겼을 뿐이다.

박종권 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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