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국내서 외자 편법조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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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삼성.한진 등 대기업들이 지난해 해외에서 거액의 자본을 유치했다고 발표한 금액 중 적어도 1조원 이상은 국내에서 조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관련 기업 및 금융기관 관계자 여러 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16일 "지난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해외증권을 1억달러 이상 발행해 외자를 유치했다고 밝힌 기업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해외증권을 국내로 들여온 후 투신.보험.은행 등에 팔아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 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들 기업이 이렇게 편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의 부당 지원이나 그룹간 협조가 있었는지도 조사 중이다. 지금까지 조사 결과 10억달러(1조1천5백억원) 이상의 해외증권이 국내에서 소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9월부터 조사에 착수한 금감원은 지금까지 ▶현대.한진 등 '해외증권 발행기업 관계자 ▶현대증권.LG증권 등 4~5개의' 해외증권 발행주간사 관계자 및 증권인수기관 관계자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H사의 해외CB를 중개했던 한 증권사의 채권담당 관계자는 "H사의 경우 발행액 1억달러 중 90% 정도가 국내에서 팔렸다" 며 "CB의 경우 적게는 50~60%에서 많게는 90% 이상이 국내에서 소화됐다" 고 증언했다.

대기업들은 지난해 주채권은행과 맺은 재무구조개선약정상의 외자유치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같은 편법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외증권을 국내서 판 것은 국내에서 유가증권을 발행할 경우 신고서를 내도록 한 증권거래법(8조)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지적했다.증권거래법 8조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지난해 해외증권 발행 규모가 1억달러 이상이었던 기업은 현대건설(5억1천9백만달러).현대전자(2억3천2백만달러).현대산업개발(2억달러).삼성물산(1억달러).삼성전자(4억달러).한진해운(1억달러).두산(1억달러) 등 7개사다.

이와 관련, 현대의 한 임원은 "CB발행 및 인수업무는 모두 주간사 회사가 알아서 했기 때문에 우리는 모른다" 고 말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우리 그룹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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