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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작가 김종록의 ‘붓다의 십자가’ 내주부터 j 연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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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붓다의 십자가’가 다음 주부터 j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거란·몽고의 침략기, 유린당하고 가시밭길 같던 이 땅의 삶. 하지만 국난기에 고차원 정신문화를 일궈낸 고려인 얘기가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밀리언 셀러 『소설 풍수』를 통해 선 굵은 동양철학 세계를 선보였던 김종록(48) 작가가 집필합니다. 마침 올해는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1011년)을 새긴 지 꼭 천년째입니다. 세월을 거슬러 독자들을 ‘천년 혼의 뿌리’로 안내할 김종록 작가를 j 가 미리 만나봤습니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팔만대장경 얘기를 소설로 쓰는 동기는.


 “고려는 ‘코리아’란 이름을 세계에 알린 당대의 문명국이다. 인쇄 문화와 금은 세공기술, 고려청자, 고려불화는 단연코 세계 으뜸이다. 대장경 판각 작업만 해도 그렇다. 전쟁 중에도 그 방대한 대역사를 낙성했다. 일본은 어림도 없었다. 그들은 줄곧 대장경 인쇄본을 구걸해 오다 20세기 초에야 신수대장경을 만들었다. 팔만대장경은 불교를 초월한 한국인의 ‘세계적 문화 콘텐트’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평가할 수 있나.

 “팔만대장경은 진리를 추구해 온 인류의 기억과 모험, 토론과 결실이 담긴 총서이자 ‘도서관’이다. 그런데 조성 과정부터 낙성식까지 미스터리가 많다.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 고려인들을 위한 오마주를 소설에서 표현하고 싶다. 물론 그 작업은 부담스러운 일이 틀림없다.”

●팔만대장경 천년을 기념하는 작업도 되겠다.

 “그렇다. 다만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고의 2차 침입 때 불탔다. 지금 해인사 장경각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은 1248년에 완성된 ‘재조(再雕) 대장경’이다. 정확히 말하면 763년 된 유산이다.”

●하지만 외적을 종교적 염원으로 극복하려는 건 ‘현실도피’ 아닌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최씨 무인정권과 왕이 39년간 강화도로 파천(播遷)한 뒤 본토에 남은 백성을 돌보지 못했다. 세속화·권력화된 불교계도 민심과 이반된 상태였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다. 고려는 대제국 몽고와 가장 오랫동안 치열하게 맞선 나라다. 삼별초 항쟁이 대표적이다. 고려인들에겐 ‘빳빳한 자존심’이란 게 있었다.”

●그렇다면 왜 무력으로 맞붙지 않았나.

 “무력으로 ‘맞짱을 뜨기’에는 힘이 부쳤다. 무엇보다 고려는 문화국이었다. 문명국가였다. 무력국가가 아니었다. 팔만대장경은 겉으로 보면 몽고군이 물러가길 바라며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몽고 앞에서 문명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다. 야만의 시대에 한시라도 진리를 잠재워둘 수 없다고 하는 자부심인 것이다.”

●천년 전 얘긴데, 자료 조사며 구상부터 쉽지 않았겠다.

 “사실 그래서 지금껏 팔만대장경을 제대로 조명한 작품이 없었다. 지난해 봄 해인사 장경각에 취재를 가서 경판에 담긴 고려인의 혼과 접맥할 수 있었다. 상상력에 현란한 날개가 돋치는 경험을 했다. 그러곤 여름부터 가을까지 덕유산 영각사 누각에서 줄거리를 구상하고 초고 일부를 썼다.”

●소설의 제목은 뭔가.

 “‘붓다의 십자가’. 어찌 보면 매우 도발적이다. 불교와 기독교가 결합한 제목이니까. 나는 깨닫는 사람은 누구나 부처라고 본다. 십자가는 예수가 처형된 뒤 기독교 상징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불가에도 갈고리형 십자가가 있다. 만(卍)자형 십자가 말고도 그 변형물이 다채롭다. 두 종교 사이엔 성자(聖者)라는 공통점이 있다. 생존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으로 져야 할 짐이 있다. 죗값이라고 할까. 팔만대장경도 불교적 가치관을 넘어선, 인류의 경험과 지식을 담은 ‘총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상징성을 표출하기 위해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팔만대장경은 불교적 내용으로 이뤄진 것 아닌가.

해인사 팔만대장경.


 “아니다. 유가와 도가적 배경 지식은 물론 그리스 철학·세계관까지 담겨 있다. 그래서 훌륭한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그 포용력으로 볼 때 중국 시안에 있는 돌 비석 유적지 비림(碑林)의 유물처럼 경교(景敎) 문헌까지 담아냈다면 그 가치가 훨씬 더해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

●무슨 소린가.

 “서기 635년 중국에 고대 아시아 기독교인 경교가 들어왔다. 이후 200여 년간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고구려나 발해, 고려에도 전파됐다. 실크로드의 종착역이 한반도였지 않았나. 만주와 옛 발해 지역 등에서 관련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다. 경교 유물 중에선 아시아 기독교 십자가가 새겨진 삼존불상도 있다. 중국 비림엔 ‘대진경교 유행 중국비’라는 게 있다. 7세기 중국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공인된 내력이 담겼다. 팔만대장경이 ‘나무 도서관’이라면, 비림은 ‘돌의 도서관’이다. 이를 10여 년 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불교와 기독교적 가치의 공존, 그렇다면 종교적 다원주의가 소설의 주제인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종교 다원주의는 열린 종교관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령에 깊이 닿지 않으면 스스로 공허해지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종교에 깊이 들어가 본질을 보면 결국 자신을 보게 된다. 내 속에 있는 성자의 요소가 상대방에게서도 보인다. 결국 ‘나’라는 입장을 돌려 놓고 보면 ‘너’라는, 다시 말해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보인다. 따라서 극락이나 천당을 말하기에 앞서 ‘다른 나’, 곧 어려운 이웃과 동포·인류를 끌어안고 사랑해야 한다. 소설에서도 그런 걸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소설은 어떤 내용으로 전개되나.

 “미리 다 말할 순 없고, 하하. 배경은 고려의 각수(刻手) 마을이다. 경전 새기는 기술자들이 모여 사는. 팔만대장경을 새기는데 마을에서 엉뚱한 그림을 새겨서 위로 올려 보낸다. 예수 탄생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감독을 맡은 스님이 조사에 나서고…. 다음 내용은 소설로 보여 주겠다.”

●소설 『붓다의 십자가』는 읽는 재미뿐 아니라 교훈적 의미도 있을 것 같다.

 “제국주의는 야만의 상징이다. 죄 없는 이웃을 무력으로 복속시키는. 몽고에 유린당한 고려처럼 우리나라는 근대화 때 열강에 포위됐다가 결국 일본 식민지가 됐다. 물론 무력으론 강대국을 상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힘만 키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천하에 떳떳한 도리로 문화인의 본령을 보여줘야 한다. 힘의 전횡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려 주자는 것이다.”

●그건 약소국의 합리화 아닌가.

 “한반도는 시련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제 인류 문명을 주도할 기운이 돌아오고 있다. 최근 동시에 이룬 압축성장과 민주화가 하나의 증거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 1등도 쏟아져 나온다. 과거의 세계관은 바뀔 수밖에 없다. 유엔도 제 구실을 못 하고, 맏형 노릇 하는 미국도 좌표가 없다.”

●한국인들이 그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근거는.

 “천손(天孫)인 한국인들은 머리가 밝다. 진취적이고 성취 동기도 높다. 주역(周易) 철학의 관점에서 한국은 ‘종만물 시만물(終萬物 始萬物)의 땅’이다. 모든 사상과 문물이 들어와 꽃핀다는 뜻이다. 지금 해외 나가면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 왜 우리만 ‘샤이(shy)’해하나. 너무 앞서가는 생각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가능성 없는 얘긴 아니다.”

●원래 고증을 통한 글쓰기를 천착하지 않나. 이런 주장은 신비주의로 들린다.

 “서양철학으로 말하면 합리적이고, 동양철학의 두뇌 격인 역철학으로 해석하면 신비인가. 양자역학을 포함한 물리학이 동양 최고의 고전 ‘주역’의 우주론과 변화법칙에 영향 받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한국은 높아진 국격을 잘 활용해 무력이 아닌 문화·사상을 꽃 피울 사명이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뚜렷한 국가관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통치체제가 필요하다.”

j 칵테일 >> “티베트에서 다시 태어났죠”

동양철학에 능한 달변가이자 작가인 김종록. 서른 즈음에 명사들이 즐겨 찾는 강사가 됐다. ‘명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는 강의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다 돌연 서울 인사동 건물을 팔았다. 짐을 싸 들고 바이칼과 히말라야 등으로 떠났다. 세계의 친구들을 사귀었고, 술도 섭렵했다. 그 무렵, 10년 전이었다. 우주의 중심이라는 티베트 카일라스(수미산) 주변에서 코라(산돌이:산 주변을 도는 것)를 했다. 어느 날 마구간 같은 건물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먹은 게 부실해 배가 꼬여왔다. 코라를 하다 이렇게 죽으면 새 먹이로 던져주는 천장(天葬)을 한다. 새벽 2시였다. 갑자기 신비한 ‘영적 체험’을 했다. “기억의 창고에 개켜둔 모든 이의 자태가 파노라마처럼 스쳤고, 어느덧 나의 옛 모습이 펼쳐졌어요.” 황홀감과 감격에 오체투지로 그 산을 경배했다. 그는 코라를 마친 뒤 전과 달라진 게 있다고 했다. “남을 이기려 하고, 따지기 좋아하던 성격이 9할쯤 사라지더라고요. 새로 태어난 경험이라고 할까요.”

김종록

1963년생. 전북대 국문과, 성균관대 대학원 한국철학과

24세 때 『파수병 시절』로 삼성문학상 수상

이듬해 『칼라빈카』로 1회 불교문학상 수상

『소설 풍수』 『달의 제국』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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