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행복은 부조리한 삶을 견디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행복할 권리
마이클 폴리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376쪽, 1만6000원

우리가 웃고 우는 게 행복 때문이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본래 그 단어가 없었다. 행복은 happiness의 번역어인데, 메이지시대 일본에서 만들었으니 탄생한 지 100여 년밖에 안 된다. 행복, happiness 모두 잠시 받은 선물 혹은 우연이란 뜻을 함축한다. 행(幸)이란 한자는 운수 좋다는 뜻이고, happiness에는 happen 즉 우연한 사건이란 인식이 깔려있다. 그렇다면 행복을 인간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뻔뻔한 현대인’이 문제일까? 맞다.

이 책도 그 점을 암시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복음을 권리로 여긴다. 일테면 대한민국 헌법도 행복추구권을 명문화(제10조)했지만, 출발은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의 통념을 배반한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당혹스러운 선언으로 시작한다. 행복은 부조리한 삶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봐야 한다는 것 . 부조리한 삶 속의 인간이란 비유컨대 신화 속의 시시포스와도 같다.

언덕 위로 돌덩어리를 밀어 올려야 하는 운명. 그건 비극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낙관하며 온 몸으로 껴안는 낙관적 태도다. 때문에 저자의 입장은 운명애(愛)를 가르쳤던 스토아철학 쪽이다. 즉 익숙하면서도 난감한 주제인 행복을 다루는 이 책은 ‘TV를 꺼라’ 등 행복해지기 위한 처방전이 아니라, 우리 삶의 특질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기를 권유하는 철학서에 가깝다. 어려움을 피하지 않기, 홀로 있기, 멀티태스킹에서 벗어나 한 가지에 집중하기 등이 그가 권유하는 삶이다.

행복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득한 우리 시대 비판도 경청할 만하다. 일테면 가계부채 급증도 “나는 뭔가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 시대에 부채란 불가피할 때 떠맡는, 유쾌하지 않는 걸로 여겨졌던 것과 매우 다른 태도다. 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기대, 미래에 대한 꿈도 “일종의 탐욕”(52쪽) 때문이다.

예수와 부처, 선불교, 그리고 스피노자 등의 성찰을 통해 균형감각을 찾아주는 것도 이 책만의 매력이다. 때로는 재치 있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21세기적 삶을 해부한다.

조우석(문화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