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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삼 판 승부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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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치문
바둑전문기자

영화를 보면 거만하게 앉아 있는 폭군의 뒤에 우람한 근육질의 노예가 서 있는 모습이 나온다. 무표정한 얼굴로 석상처럼 서 있는 그는 혀가 잘려 있어 말도 할 수 없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왕의 목을 한 손으로 비틀 수 있건만 그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왕 또한 그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꽤 위험한 상황 같지만 폭군은 안전하다.

 바둑엔 ‘승부수’라는 게 있다. 이대로 가면 진다고 느낄 때 던지는 모험적인 강수를 말한다. 승부수가 통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나빠져 때로는 대마 함몰로 이어진다. 승패를 떠나 이런 바둑은 통렬한 맛이 있다. 극단적인 성공과 극단적인 실패를 반복하는 이세돌 9단의 바둑을 보면 옥쇄조차도 장쾌하게 느껴진다. 그는 단검 하나를 들고 화살이 비 오듯 하는 적진을 돌파한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지만 기어이 적장의 심장에 일격을 날린다.

 영화 속의 노예는 왜 그렇게 무력한 인생을 살까. 끝난 인생이고 허깨비 인생이지만 왕의 울타리 안에서 편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바둑은 여러 판을 둘 수 있으니까 반역이나 혁명은 흔한 일이다. 실패하면 돌을 통에 쓸어 담았다가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된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딱 한 판뿐이다. 노예의 승부수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데, 거역할 수 없도록 길들여진 죽은 영혼이 어느 날 깨어나 반역을 꿈꾼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사실은 노예만의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세상의 절반은 승부수를 꿈꿀 뿐 일생 동안 단 한 번의 승부수조차 던져보지 못하고 죽은 듯 살다가 간다.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승부수를 던져 본다.

 북녘의 동포들도 참 억울해 보인다. 그토록 억울한데 왜 가만있을까 싶지만 한 번뿐인 인생인데 아오지 탄광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은 사람 누가 있을까. 나 자신 입장을 바꿔 봐도 그렇다. 서울과 개성이 지척인데, 나는 간발의 차이로 남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자칫 북한 땅에서 태어났다면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운수가 좋았을 뿐이다.

 한국의 일인자 이세돌 9단과 중국의 일인자 구리 9단이 지금 세계대회 결승전을 벌이고 있다. 광풍노도의 혈전을 벌인 끝에 23일의 첫 판은 구리가 이겼고 24일의 둘째 판은 이세돌이 이겼다. 5번 승부니까 아직도 세 판이 더 남았다.

 꽃들이 바람에 눈처럼 흩어지던 봄날, 그 피 냄새 물씬 풍기는 바둑을 구경하다가 인생도 다섯 번이나 세 번쯤 살 수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허망한 상상에 빠져 본다. 노예는 폭군의 목을 졸랐을까. 에이 그건 말도 안 된다. 다음 생이 있는데 차라리 죽고 말지 어느 누가 노예가 되나. 북한은 뒤집어졌을까. 물론이겠지. 북한뿐 아니라 남한도 뒤집어졌을 것이다. 세상 어느 누가 억울함을 참을 것이며 어느 누가 분노를 견딜 것인가. 그렇다면 세상은 온갖 승부수가 난무하는 통제 불능의 전쟁터로 돌변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인생이 딱 한 번뿐이라는 건 강자들에겐 신이 내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권세가 높을수록 머리 숙여 감사하고 더 겸손해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