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봄날에 찾아가는 마곡사의 환상적인 봄길은 갖가지 꽃과 여리디여린 잎으로 꾸며놓은 무릉도원이었다. 예부터 호서지방에서는 ‘춘마곡(春麻谷)’이라고 했다. 봄에는 마곡사의 경치가 인근에서 으뜸이란 뜻이다. 지금의 우리처럼 그 시절에도 봄을 즐기기 위해 이 골짜기(谷)로 마(麻)처럼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녀갔을 조상들의 소박했던 나들이를 그려본다.
삶과 믿음
꽃 구경은 겨울의 고단한 현실을 떠나 봄이라는 희망의 무릉도원을 찾아나서는 일이었다. 전란과 가난으로 어려웠던 시절
백범 김구 선생은 평생 가장 큰 신세를 진 곳으로 마곡사를 꼽았다. 난세를 피해 몸을 의탁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얼마 동안 승복을 입고 생활했다. 큰절은 물론 인근 백련암에도 선생의 체취가 남아 있다. 출가 당시 삭발하는 심경을
무릉도원도 알고 보면 천상의 신선 세계가 아니라 난리를 피해 들어온 은둔과 보신(保身)의 땅일 뿐이다. 도연명은
은둔이란 세상에서 가장 긴 만행(萬行)이다. 법정 스님처럼 숨음으로써 오히려 더 스스로를 드러내는 역설적인 도리가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럽의 산티아고 가는 길과 일본 오헨로 길처럼 마곡사의 ‘백범 명상길’은 십승지 순례길이다. 그곳에는 건축가 승효상 선생의 덜어냄과 비움을 추구하는 건축 철학과 공(空)이라는 불교정신을 한 몸에 버무린 나지막한 현대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걷다가 지치면 몸을 누이고 또 마음을 비우고 덜어낼 수 있는 곳이다. 여러 채의 건물이 각각 외따로 떨어진, 그러면서 은근히 하나로 묶여진 공간이기도 하다. 은둔객이 되어 꽃 지고 잎 나는 자리에서 계곡물 소리를 오래도록 들었다. 세상의 화려함과 번거로움 그리고 내 마음속의 전란(戰亂)을 피해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처럼 나도 이 길을 천천히 걸었다. 언젠가 50대 가장이 “젊을 때는 가을이 좋더니 이제는 꽃피는 화사한 봄이 더 좋습니다”고 하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백번 공감하며 혼자서 또 고개를 끄덕였다.
백범길을 한 바퀴 돌고서 으스름할 무렵 절 입구의 영산전(靈山殿)을 참배했다. 현판을 일부러 소리 내어 읽었다. 그 음을 따라 영산홍의 화사함이 묻어났다. 처마를 맞대고 있는 태화선원의 당호는 매화당(梅花堂)이다. 집 그대로가 매화인 꽃 대궐인 셈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형형색색의 연꽃 등을 불 밝혀 놓았다. 그 덕분에 밤길까지 걸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린 봄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