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 중독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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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불안감을 느낄 때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해지고 심장 박동은 빨라진다. 위장은 마구 뒤틀리고 머리는 고장 난 자동차 변속기마냥 김을 내뿜는다. 이럴 땐 불안함을 없애주는 신경안정제 자낙스가 간절히 필요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통제 방식과 실패 이유를 살펴본 연구진은 놀랍게도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 다수가 (무의식적으로라도) 스스로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이를 유지하려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불안할 때 인지능력이 향상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안한 상태를 오히려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인지능력이 향상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상태를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 심리학자인 마야 타미르는 최근 대학생 47명을 대상으로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가’ 등을 묻는 신경증 표준 테스트를 실시했다. 테스트를 한 후에는 참가자에게 쉽거나(설거지) 어려운(연설하기, 시험보기) 과제를 주고, 과제를 수행하기 전 느끼고 싶은 감정을 선택하도록 했다. 신경증 증상을 가졌다고 판명된 참가자들은 힘든 과제를 수행하기 전 대부분 걱정과 불안을 선택했다. 반면, 신경증이 없는 참여자는 반대의 감정을 선택했다. 신경증을 가진 참가자들이 불안을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타미르가 실험 참가자에게 철자 바꾸기 퀴즈를 주기 전, 불안함을 느꼈던 과거 사건을 떠올린 신경증 참가자들은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한 뒤 문제를 풀었던 다른 신경증 참가자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냈다. 반면, 신경증이 없는 참가자의 경우, 게임 전 불안감을 떠올렸는지 여부는 성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유용함’보다 ‘익숙함’ 때문에 불안감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덴버 대학 심리학자 브렛 포드가 말했다. 포드는 각종 감정을 나열하고 “일상 생활에서 해당 감정을 어느 정도로 느끼나요”라고 물어보는 설문을 통해 대학생 139명의 특질 정서(trait emotion, 개인이 항상 느끼는 감정)를 조사한 뒤, 설문 내용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을 ‘두려움 정서(불안, 걱정, 두려움을 계속 느낌)’와 ‘분노 정서(분노와 짜증, 불쾌감)’ ‘행복 정서(항상 즐겁고 유쾌함)’로 분류했다. 6개월 뒤 참가자들을 다시 실험실로 부른 포드는 이들에게 각종 감정을 나열한 목록을 보여주고, 이 중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은지 물었다. 예상대로, 유쾌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행복감을 선택했다. 그러나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항불안제 아티반으로 불안을 억누르려 하리라는 고정관념과 반대로, ‘두려움 정서’로 분류된 학생들은 아무리 불쾌한 감정일지라도 걱정과 불안을 느끼고 싶다고 답했다(‘분노 정서’로 분류된 학생도 이와 비슷한 답을 했다). 어떤 대상을 ‘원하는 일’과 ‘즐기는 일’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신경물질로 조절되는 별개 감정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미시간 대학 신경과학자 켄트 베리지는 어떤 감정을 원하는 건 그 감정을 즐기는 일과 분명 다르다고 말했다.

불안을 느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불안감에 중독된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불안감을 항상 느끼면서도 본인조차 그 이유를 잘 모른다”고 뉴욕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 정신과 의사 해리스 스트라티너가 말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을 정당화할 명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거기에 매달린다. 불안감을 합리화할 이유를 찾고 나면 그 이유는 다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들은 항상 느껴서 익숙해진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에 중독된다. 혹시라도 평온함을 느끼면 이들은 오히려 공허해진다. 그래서 항상 불안해지고 싶어한다”고 스트라티너가 말했다. 불안감을 ‘즐긴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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