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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광화문 연가’ 뮤지컬인가 콘서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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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뮤지컬 ‘광화문 연가’가 인기다. 제작사 측은 “현재 유료 객석 점유율이 70%를 상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매사이트 인터파크 순위에서도 조승우가 나오는 ‘지킬 앤 하이드’와 지구촌 메가 히트작인 ‘태양의 서커스’를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창작 뮤지컬이, 그것도 초연 작품이 이렇게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시청률이 높다고 ‘아내의 유혹’을 좋은 드라마라고 할 수 없듯, 난 ‘광화문 연가’를 지지할 수 없다.

 ‘광화문 연가’의 흥행코드는 뭘까. 무엇보다 ‘사랑이 지나가면’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등으로 친숙한,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가 꼽힌다. 울림이 컸다. 지난해 ‘슈퍼스타 K2’를 통해 이문세씨가 새삼 주목을 끈 점이나, 최근 ‘세시봉’으로 상징되는 복고 열풍도 한몫 했을 듯싶다. 윤도현·송창의·김무열·양요섭(비스트) 등 출연진도 화려했다. 그러나 작품 완성도는 아쉬웠다.

 ‘광화문 연가’는 아바의 히트곡을 엮은 ‘맘마미아’(Mamma mia)처럼 주크박스(Jukebox) 뮤지컬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매력 중 하나는 타이밍이다. 익히 잘 알고 있는 노래가, 아주 그럴듯한 상황에 불려질 때 관객은 무릎을 치게 된다. ‘광화문 연가’엔 그런 게 없다. 1막 초반 남자 주인공 상훈이 여자 주인공 여주에게 반해 ‘소녀’를 부를 때가 그나마 주크박스 뮤지컬의 특성을 살려낸, 거의 유일한 대목이었다. 나머지 경우엔 왜 이 때, 이 상황에서 이 노래가 나오는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는 대부분 이별의 아픔이나 회한을 담아낸다. 가사가 엇비슷한 탓에 스토리를 이어가기 쉽지 않다. 제작진의 고충이 이해된다. 하지만 난수표처럼 얽힌 실타래를 푸는 게 또한 제작진의 능력이다. 그나마 1막은 1980년대 학생운동 얘기를 끌어들인 게 다소 무리였지만, 공들인 흔적은 역력했다. 2막으로 가면서 스토리는 증발한 채 출연진들이 한 명씩 번갈아 나와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게 과연 뮤지컬인가. 헌정 콘서트 아닐까. 이러고도 “주인공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 것”이라고 주장하면 난감하다.

 양념도 없이 고기덩어리 하나 던져 놓고 요리하라고 하면, 뛰어난 쉐프라도 버거울 게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사실 그렇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노랫말을 갖고 스토리를 엮어 가야 하니 다소 억지스럽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이 나왔다. 2006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저지 보이스’(Jersey Boys)다. 1960년대 인기밴드 ‘포 시즌즈’의 노래로 만든 이 뮤지컬은, 딴 얘기를 하지 않고 ‘포 시즌즈’ 그룹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아냈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무명 시절은 어땠으며, 멤버간 갈등은 무엇이었는지를 세밀히 그려냈다. 그 와중에 ‘포 시즌즈’의 음악이 삽입되니 스토리 전개에 무리가 없었다.

 ‘광화문 연가’ 역시 이영훈 작곡가의 분신과도 같은 한상훈이란 인물을 등장시킨 걸 보면, ‘저지 보이스’와 비슷한 형태일 듯싶다. 그런데 ‘맘마미아’ 스타일이건, ‘저지 보이스’를 표방했건, 뮤지컬 타이틀을 달았다면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스토리를 포기한 ‘광화문 연가’는 한국 뮤지컬의 퇴행이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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