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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주머니에서 나온 쪽지에…

중앙일보

입력

'가는 길 험난하니 탈북 만이 살길이다.' '조선인민은 좋은 인민이 아니라 바보 인민이다.' '자유를 찾아 남조선으로….'

이달 중순 북한 양강도 보천군에서 일곱 가족(18명)이 집단으로 탈북을 시도하다 국경 경비대에 체포됐다. 이들 중 한 명의 주머니에서 위와 같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대북전문매체인 데일리NK는 28일 "체포된 주민 중 신흥리 보위부 소속 금광에서 일하던 신모(29)씨의 주머니에서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을 쓴 종이가 몸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며 북한 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일행은 비사회주의 검열을 위해 파견된 보위사령부 검열조에 넘겨져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주민들에게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강성대국을 건설하자' 등의 정치구호를 제시하고 사상교양 사업을 진행해왔다. 2000년대 초반 현지지도에 나선 김정일은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입니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이 말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잘 견뎌내고 만성적인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체제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주민들을 치하한 말로 이해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탈북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쪽지의 내용은 이런 구호와 김정일의 발언을 패러디한 것이다. '웃으며 가자→탈북 만이 살길이다' '참 좋은→바보' 등으로 문구와 단어를 바꿔 조롱했다는 얘기다.

소식통은 "한 동네에서 이웃들끼리 탈북을 시도한 것으로 봐서 선동을 한 주모자와 문제의 글을 쓴 자를 밝혀내기 위해 심한 고문이 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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