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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청 건강카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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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형식
충청·대전지역 취재팀장

장애인 김경엽(35)씨, 요즘 살맛 난다. 한 달 전 대전시청 로비에 있는 ‘건강카페’에 취직해서다. 30㎡ 규모의 자그마한 카페에서는 빵과 음료를 판다. 김씨는 카페에서 손님들에게 빵을 파는 상술을 배운다. 손님을 대하는 솜씨는 아직 서투르다. 사물의 판별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취직해 보니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한다. “앞으로 즉석에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Barista) 자격증을 따서 자립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난달 23일 문을 연 카페는 대전시가 5000만원을 들여 만든 뒤 사회적 기업인 ‘한 울타리’에 운영을 맡겼다. 대전시가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나선 새로운 실험이다. 전국 자치단체 중 처음이다. ‘건강카페’ 직원 8명은 모두 3∼6급의 장애가 있다. 노동력은 있으나 일반 직장에서는 적응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하루 4∼5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는 장애인들의 월급은 50여만원(시간당 최저임금 4320원). 카페의 시작은 초라하나 그 의미는 크다.

 그동안 대전시의 장애인 일자리 창출 정책은 직업재활시설이 고작이었다. 장애인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상자 접기 등을 시키는 게 전부였다. 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은 별로 인기가 없다. 안 팔리니 이익을 내기 힘들다. 시의 지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건강카페’를 만들었다. 단순근로나 보호고용을 넘어 장애인들에게 경영 마인드를 가르쳐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돕자는 차원이다. 사회복지사 등 2명이 장애인들에게 커피 끓이는 방법과 손님을 대하는 요령을 반복해 가르쳤다.

 카페를 운영하는 정운석 대표는 “장애인들이 물건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팔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아 자립심을 키우고 있다는 게 성과”라고 말했다. 다른 성과도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착한 소비’ 문화가 조성되고 있다. 카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다. 시민들이 일부러 이 카페를 찾아 준다. 사회적 약자도 돕고, 맛있는 커피도 즐기는 일석이조(一石二鳥) 소비문화다. 카페의 하루 평균 매출액은 100만원을 넘는다. 웬만한 음식점 못지 않다. 대전시는 앞으로 이 같은 카페를 5개 구청은 물론 산하 모든 사업소와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렇게 해서 올해 안에 만들려는 장애인 일자리는 500개 정도다.

 무상급식·무상의료 등 복지 포퓰리즘으로 공방을 벌이는 정치인들은 대전시의 ‘건강 카페’에 와봐야 한다. 무작정 퍼준다고 홀로서기가 되지 않는다. 내 힘으로 혼자 설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키워주는 게 진짜 복지정책이다. 한 가지 더. 호화청사로 눈총을 받는 일부 자치단체장도 이 카페를 이용해 봐야 한다. 청사와 사무실이 얼마나 쓸모없이 넓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 작지만 건강한 카페, 이런 게 주민을 위한 길이다.

서형식 충청·대전지역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