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 새천년 첫 일출 놓고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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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MBC가 새 밀레니엄의 첫 일출 장면을 각각 다른 나라에서 생방송할 예정이어서 새천년 첫 일출 논쟁이 국내 방송사끼리도 재연되고 있다. 이는 영국이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시로 삼은 이래 그리니치 천문대의 정반대쪽에 위치한 나라가 가장 먼저 하루를 맞이하는 것으로 약속해 빚어진 현상인데 각국의 이해관계까지 겹쳐 혼선을 빚고 있다.

KBS와 MBC 양사 모두 12월 31일부터 2000년 1월 1일까지 28∼32시간 동안 진행할 밀레니엄 특집방송 가운데 주요 이벤트로 새 밀레니엄의 첫 일출 장면을 생방송할 계획인데 KBS는 피지에, MBC는 키리바시에 각각 방송팀을 파견해 놓고 있다.

피지는 날짜변경선 바로 옆에 위치해 전통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맞이하는 나라로 알려져있으며 키리바시는 지난 95년 티토 대통령이 날짜변경선을 동쪽으로 잡아당겨 놓은 이후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로 새롭게 알려졌다. 이를테면 전통적 맹주인 피지에 신흥강호라고 할 수 있는 키리바시가 도전장을 던진 형국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33개의 산호섬에 인구 7만8천여명의 소국인 키리바시 공화국이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의 지지 등에 힘입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키리바시는 지난 95년 선견지명이 있던 테부로로 티토 대통령이 날짜변경선을 동쪽으로 잡아당겨 놓아 이전까지 날이 가장 먼저 밝아오는 곳으로 알려진 뉴질랜드의 채텀제도를 22분차로 제치게 됐다. 키리바시는 또 작년 말 대통령 직속의 밀레니엄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 동쪽끝에 위치한 캐롤라인 섬을 밀레니엄 섬으로 개명했으며 이 섬 북서쪽의 최대 숙박시설인 캡틴쿡 호텔은 2000년 1월 1일을 전후한 예약이 벌써 끝난 상태다.

MBC 박노업 PD는 "전세계 87개국이 참가하는 밀레니엄 특별생방송 〈2000 투데이〉 주관사인 영국 BBC에서 새천년의 첫 일출을 볼 수 있는 땅은 키리바시라고 공식발표해 최근 세계 각국의 방송단이 모두 피지에서 키리바시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반면 KBS는 새천년준비위원회가 2000년의 첫 일출을 볼 수 있는 땅으로 공식지정한 피지를 고수하고 있다. KBS는 새천년의 첫 해가 떠오르는 2000년 1월 1일 새벽 4시에 피지 현지에서 첫 햇빛을 채화하는 모습을 무궁화 위성을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며 여기에서 채화된 불을 2002년 월드컵 주경기장인 상암경기장 옆에 지어질 '천년의 문'에 영구보관한다.

KBS 이석우 제작본부장은 "관광수익 등 새천년과 관련한 경제효과로 인해 날짜변경선 인근에 위치한 소국들이 서로 자기 나라가 첫 일출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KBS는 새천년위원회가 공식 지정한 피지에서 일출장면을 생중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MBC 보도국 취재팀은 〈2000 투데이〉와는 별도로 역시 '가장 먼저 새천년의 해가 뜨는 땅'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뉴질랜드의 채텀제도 내 기즈번 시로 보도진을 보내 현지에서의 생방송을 준비중이며 SBS는 피지에 취재팀을 보내놓고 있다.

'새천년의 첫 해가 떠오르는 땅' 논쟁 덕분에 시청자들은 피지와 키리바시, 기즈번 등 3군데의 일출장면을 한꺼번에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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