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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포기할 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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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과학의 모순이다. 그린 에너지 원자력이 파괴 없는 핵무기로 돌변하는 역습의 순간들을 지구촌은 목도하고 있다. 핵 분열 저지의 최후 수단이 헬기와 소방차의 살수(撒水)라니. 이런 야누스가 또 있을까. 세계 유일의 피폭국(被爆國)에서 다시 방사능이 누출되는 것은 비극이다. 일본인들의 아픔과 불신의 늪을 헤아릴 길이 없다. 분노의 마그마는 언제 어떻게 표출될 것인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를 떠올려본다. 어느 누구보다도 애가 끊는 심정일 게다. 그는 일본 원자력 입국의 설계사다. 정계 진출 7년 만인 1954년 원자력 평화 이용 예산통과를 주도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 신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였다. “악마의 예산” 얘기가 나왔다. 일본의 반핵·반미운동은 극에 달했다. ‘나카소네 예산’은 이 와중에 원자력의 터를 다졌다. 원자력실이 설치됐다. 나카소네는 이후 8개의 원자력 관련 법안을 성립시켰다. 원자력연구소·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현재의 일본 원전 체계다. 국책(國策)은 법률과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념의 산물이었다.

 나카소네의 원자력 외길은 미국의 원폭 투하 때 핵(원자력)의 위력을 접하면서 시작됐다. “과학기술로 일본이 발전하지 않으면 영구적 4등 국가, 농업국가가 되고 만다는 점을 통감했다”고 한다. 그는 53년 미국의 ‘평화를 위한 핵(Atoms for Peace)’ 정책을 놓치지 않았다. 원자력 입국을 장외에서 떠받친 인물이 요미우리(讀賣)신문 사주였던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郞)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대대적인 원자력 알레르기 해소 캠페인을 폈다. 당시의 SF 만화 ‘철완 아톰(Atom)’은 이와 맞물려 있다.

 나카소네는 정계 은퇴 후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06년 이바라키현 원자력 50주년 기념강연을 들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상시 점검을 해서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지진과 테러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예전에 만든 원자로가 30년 가까이 된다. 진도 6 또는 7의 지진이 왔을 때 괜찮을 것인가. 만약을 위해 보강공사를 하는 것이 긴요하다.” 후쿠시마 원전 가동은 올해로 만 40년이다. 일본을 미국·프랑스에 이은 3대 원자력 강국으로 이끈 대원로의 가슴은 찢겨져 있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역풍은 거셀 듯하다. 일본은 원전 발전 비율을 26%(2008년 현재)에서 2030년엔 49%로 높일 계획이다. 이의 재검토는 불가피하다. 원전 14기 신·증설에 대한 저항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2년 전 내각부 원전 여론조사에서조차 ‘안심한다’는 비율(42%)은 ‘불안하다’(54%)를 넘지 못했다. 원폭 피해는 현재의 역사다. 증상은 대(代)를 넘는다. 후쿠시마 사태는 세계의 원전 르네상스에 찬물을 끼얹는 분위기다. 가동 일시중지, 건설 보류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일각에서도 원전 확대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현재의 발전 비율 31.4%(21기)를 2024년까지 48.5%로 늘릴 방침이다.

 그러나 시침을 거꾸로 돌릴 순 없다. 19세기는 석탄, 20세기는 석유의 세기였다. 그 결과가 지구온난화다. 늘어가는 전력 수요에 맞서 원자력을 동결하고 석탄·석유 의존으로 가는 것은 역사의 후퇴다. 석탄·석유의 고갈은 빨라진다. 고유가를 감당할 수 있는가.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은 어떻게 줄일 것인가. 풍력·태양력은 아직 미약하다. 자원 빈국인 우리는 원자력 외의 대안을 찾기 힘들다. 원전에서 나오는 양질의 전력은 한국 산업화의 일등공신이다. 문제는 안전이다. 지진·쓰나미에도 끄떡 않는 철옹성 원전을 만들어야 한다. 비상시 펌프 없이도 자동적으로 냉각수가 핵연료봉에 공급되는 꿈의 원자로 개발도 급선무다. 과학은 한계 없는 프런티어다.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