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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와인은 생각이 필요 없다 … 그냥 마셔라, 느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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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인 샤토 페트뤼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중 하나다. 평균 수백만원, 빈티지에 따라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1947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결혼식 와인으로 주목받았고, 53년 여왕의 대관식에도 쓰였다. 미국에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재클린 여사가 즐겨 마신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류사회 와인의 상징이 됐다. 그 이름을 들어본 이는 많으나 직접 마셔본 이는 드문 명품 와인 페트뤼스. 그 신화의 주인공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와인 양조자인 장클로드 베루에(69)를 만났다. 페트뤼스 44개 빈티지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1964년부터 44년간 샤토 페트뤼스에서 양조 책임자를 지냈고, 2008년 은퇴 후에도 일주일에 두 차례 페트뤼스에 조언을 하고 있다.

초특급 와인 ‘페트뤼스’ 44년간 만든   
장클로드 베루에

와이너리에서 와인 양조 책임자를 와인 메이커 또는 테크니컬 디렉터로 부른다. 기술에 더 초점을 맞춘 용어인 듯싶다. 장클로드 베루에는 자신을 와인 양조학자(oenologist)라고 소개했다. 화법이 영락없는 학자다. 질문에 답할 때는 꼭 역사적 배경 설명부터 시작했다. 그는 영어로 대화할 수 있었지만 인터뷰는 프랑스어로 하겠다고 했다. 풍부한 표현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가 만든 와인과 통역을 곁들인 인터뷰는 식사를 포함해 다섯 시간 이어졌다.

●와인 양조 책임자는 어떤 자리입니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겁니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듯이 와인 생산을 위한 모든 시스템을 설치하고 관리해요. 병입 작업, 위생 관리, 성분 분석, 미생물 연구를 하고 시음 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와인의 정체성, 개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러기 위해선 땅과 포도 품종, 기상학까지 이해해야 하지요.”

●양조를 공부했나요.

 “보르도 경제에서 와인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1955년 양조학이란 게 생겼어요. 이전까지는 화학자와 약학자들이 양조 일을 했어요. 프랑스·독일·미국 대학에 잇따라 양조학과가 신설됐고, 저는 60년 보르도대학 양조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스물두 살 때 페트뤼스 양조 책임자가 됐는데, 페트뤼스 소유주인 장피에르 무엑스는 왜 경험이 전혀 없는 당신에게 이 자리를 제안했을까요.

 “그러게요. 미친 짓이었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웃음) 대학에서 추천을 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우리 클래스에서 베스트였거든요. 어느 날 전화를 받고 그분 댁에 갔더니 와인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그림, 문학, 음악, 예술, 인생을 주제로 묻더군요. 2~3주에 한 번꼴로 가서 오랜 시간 대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5~6개월쯤 했는데, 그게 입사 면접이었어요.”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공부했나요.

 “살면서 꼭 잡아야 하는 기회라는 게 있습니다. 무엑스는 프랑스에서 내로라하는 미술품 수집가였습니다. 페트뤼스에 끌린 게 아니라 교양 넘치는 무엑스에게 매료돼 일을 꼭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일부러 노력한 건 없어요. 나도 어려서부터 문학과 예술을 자연스레 접했기 때문에 관심사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시인이었고 친구분들도 다 예술가였죠. 책과 그림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와인 만들 사람을 찾는데, 왜 예술 얘기를 잔뜩 한 걸까요.

 “제 인격적인 면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요.”

●문학적 소양이 왜 필요합니까.

 “나는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다 읽었어요. 그의 문학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이에요. 일본 문학도 매우 시적이라고 생각해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게끔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는 감각적 표현들은 와인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요즘 비즈니스에서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포도밭에서 병입에 이르기까지 와인을 만드는 건 팀 플레이입니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아야 하지요. 문학은 소통을 도와줍니다.”

 보르도의 와인상이었던 장피에르 무엑스는 페트뤼스를 독점 판매하다 60년대 초 샤토 페트뤼스의 지분을 인수해 주인이 됐다. 무엑스는 훗날 베루에에 대해 “페트뤼스는 루이 14세이고, 베루에는 우리의 콜베르(루이 14세 때의 재상)다”라고 평할 만큼 돈독한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양조 일은 어떻던가요.

 “1964년 9월 15일 채용이 결정됐습니다. 그리고 엿새 후인 21일 첫 포도수확을 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큰 책임을 맡게 됐지요. 와인을 잘 만들기는커녕 사고만 안 나면 다행이다 싶었어요. 포도통을 엎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1964년 빈티지는 마실만 한 와인이 아니겠네요.

 “신기한 게,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와인이 잘됐어요. 하느님이 도왔습니다. 와인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땅이 인간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도 알았죠.”

●양조 철학은 뭡니까.

 “테크닉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와인입니다. 포도를 통해 땅을 표현하는 것, 포도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죠. 양조 기술을 많이 발휘하지 않고 술지게미가 가라앉은 상태로 놔뒀다 병 안에 넣어요. 정제와 필터링도 하지만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해마다 따로 결정해요. 그해 포도를 수확했을 때 자연이 말해줍니다. 최고의 테루아를 그대로 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최고에는 왕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의 와인과 44년간 이를 만들어 온 장인의 손. 기자와 만난 날 사진 촬영을 위해 민가다헌에서 준비한 1994년 빈티지의 페트뤼스를 장클로드 베루에가 잡고 포즈를 취했다. 17년 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와인을 한국에 와서 다시 만난 것. 수백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가격 때문에 맛을 보지는 못했다. 대신 페트뤼스 은퇴 후 운영하고 있는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샤토 사미옹과 에리미나로 아쉬움을 달랬다.

●44년간 최고의 명성을 잃지 않은 비결은 뭘까요.

 “페트뤼스는 진흙질인 보르도의 전형적인 와인이에요. 진흙 땅에 심은 메를로는 부드럽고, 알코올 느낌이 풍부하며, 감각적인 와인을 만들어줘요. 20세기 사람들이 좋아하는 감각적인 취향과 맞아떨어졌지요. 운이 좋았어요. 마케팅 측면에서는 2개의 사건이 페트뤼스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됐어요.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즉위식에 1947년산 페트뤼스가 나왔어요. 어마어마한 광고 효과였지요. 60년대 초 케네디 대통령이 좋아하는 와인으로 알려지면서 더 인기를 얻었습니다.”

●내적인 성공 요인은요.

 “흠잡을 데 없는 품질 덕분이겠죠. 세상에는 수요가 많아 희귀한 것은 금세 가격이 올라가지요.”

 페트뤼스는 포도 수확기에 비가 오면 헬리콥터를 띄워 바람을 일으켜 포도를 말린 뒤에 수확한다. 세컨드 와인도 만들지 않는다. “혼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예요. 우리는 최고만을 만든다는 철학이지요. 나머지는 다른 데로 보냅니다.” 페트뤼스는 11만4000㎡의 작은 농장이다. 연간 생산량이 2500상자에 불과해 여간해선 맛보기 힘든 와인이 돼버렸다.

●당신이 만든 첫 작품과 마지막 44번째 작품 중에서 어느 게 더 좋다고 스스로 평가합니까. 아무래도 44년차 작품?

 “64년부터 2007년까지 44개 빈티지를 만들었어요. 64년은 아무것도 모르고 만든 와인이에요. 운 좋게 자연이 좋은 와인을 선사했지요. 2007년은 양조기술과 포도재배 기술이 모두 발달했어요. 와인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죠. 하지만 최고의 와인은 기술만으로는 만들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골라 주세요.

 “64년 빈티지.”

●페트뤼스처럼 비싼 와인을 마실 땐 어떻게 마셔야 하나요.

 “그냥 마시면 됩니다. 집중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집중하면 뇌세포가 활동하면서 사람이 지적이 돼요. 그럼 느낄 수 없어요. 소개팅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너무 애쓰고 긴장하다 오히려 망치는 것과 같아요.”

●비싼 와인을 많이 마셨는데, 싼 와인도 입에 맞습니까.

 “사람들 입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해 세계 와인을 두루 마십니다. 내 와인셀러에는 스페인, 그리스, 아르헨티나, 중국 와인까지 있어요. 요즘엔 달콤한 와인이 많더군요. 요즘 사람들은 신경이 날카로워 그런가 봐요. 바닐라 향이 마음을 가라앉힌다고 하잖아요. 마셔본 와인 중 가장 비싼 것은 샤토 라투르 1929년과 페트뤼스 1947년입니다.”

●와인을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조언해 주세요.

 “시음을 많이 하고, 많이 느껴보세요. 영화 보러 가면 영화에 몰두하고 싶지 남이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건 싫잖아요. 와인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의 설명은 필요 없어요. 진정 좋은 와인은 태어난 땅을 말해줘요. 개성이 있는 것이지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걸 존중해야 해요. 다른 게 없으면 인생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다르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너무 다양해 와인이 어려운 것 같은데요.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한 한국인들이여, 스스로 자유를 만끽하세요. 자기만의 판단을 가지세요. 난 로버트 파커, 잰시스 로빈슨 같은 평론가들로부터 평점을 받는 걸 싫어해요. 점수를 받으면 와인이 잘 팔리고, 준거(準據)를 만들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파커가 좋아하는, 그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만들라는 게 되거든요. 그러면 본래 가진 땅에서 내는 테루아를 잃는 겁니다. 와인은 땅을 병에 담는 겁니다. 그 풍성함을 저버리거나 획일화해서는 안 돼요. 보르도, 알자스, 부르고뉴, 론 중에서 어느 와인 산지가 최고라고 할 수 있나요. 저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맛의 즐거움, 여행의 재미가 있는 것이지요. 다 똑같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브람스, 쇼팽, 모차르트, 베토벤… 다 다르니까 음악을 사랑하는 거잖아요. 음악은 사람의 작품인데, 심지어 와인은 자연의 작품이잖아요.”

 인터뷰 장소는 서울 인사동의 퓨전 한식 레스토랑 민가다헌이었다. 그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접시 깊숙이 박고 코로 먼저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다채로운 표현으로 음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채로 나온 생굴을 맛본 뒤 “요오드의 맛이 살아 있는 게 바다 향을 확 낸다” “육질이 쫄깃한 게 프랑스 굴보다 낫다”고 했다. 와인을 놓고는 “여러 과일 향이 들어 있는데 무슨 과일인 것 같으냐”고 퀴즈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올리브 오일에 뭘 넣은 거예요? 살짝 쓴맛이 나네요. 아, 마늘의 쌉쌀한 맛이었군요.” 와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와이너리 두 곳에서 만든 샤토 사미옹(2008년)과 에리 미나(2008년)를 내왔다.

●개인 와이너리를 따로 갖고 있었던 겁니까.

 “페트뤼스에서 가까운 라랑드포므롤 지역의 샤토 사미옹과, 고향인 프랑스 남서부 바스크 지방에 작은 와이너리를 사뒀어요. 페트뤼스 이름을 이용해 내 와인을 소개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알리지 않았습니다.”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려서 식사 시간이 되면 유리병에 와인을 받으러 지하 창고에 내려갔어요. 선명한 레드 와인의 색깔과 향을 맡는 게 즐거웠어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와인을 맛본 건 5세 때였어요. 보르도에선 겨울에 먹는 수프에 레드 와인을 조금 타서 먹거든요.”

●두 아들도 같은 길을 가고 있는데요.

 “내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큰아들 올리비에는 내 뒤를 이어 샤토 페트뤼스의 양조 책임자가 됐어요. 생테밀리옹의 유명한 와이너리인 샤토 슈발블랑에서 5년간 일하고, 로마네 콩티, 샤토 마고, 샤토 오브리옹에서 훈련받은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지요. 둘째 제프는 사미옹에서 일해요. 포도밭 재배 전문가예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하는 게 있습니까.

 “양조자는 누구보다 감각이 발달해야 하고, 늘 이 감각이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자연적인 현상에 민감해요. 온도, 습도, 조명, 기운…. 어느 자리에 오크통을 놓으면 안 된다는 걸 땅만 밟아도 알아요. 오래전부터 향 전문가로부터 후각 훈련을 받고 있어요. 향은 사람이 네 발로 걸을 때는 30%를 감지했는데, (직립 보행으로 인해) 오늘날은 1%도 감지하지 못한다고 해요.”

 그는 새로운 공간에 가면 항상 예민해진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던 민가다헌의 ‘서재방’의 천장과 바닥, 벽에 흐르는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명성황후의 조카가 살았던 한옥이었다고 설명하자 “내가 무당은 아니지만 이 자리가 정말 명당”이라고 했다.

●와인계의 전설이신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우리는 이 땅을 잠시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현재를 살 뿐이지요.” 


j 칵테일 >> "저희도 우울해요”

●페트뤼스 최고의 빈티지는 어느 해인가요.

 “그건 여기 있는 아름다운 여성 중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방 안에는 여자 5명이 있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족집게 과외’같이 숫자들을 불러줬다.

 “71년, 82년, 89년, 95년, 98년, 2001년, 2004년이 좋았어요. 71년은 굉장히 섬세한 메를로의 특성을 잘 살린 빈티지예요. 2001년과 2004년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데, 사실 가격경쟁력이 가장 좋은 와인이에요. 포도 작황이 워낙 좋았던 2000년에 가려져서 그렇지, 2001년은 보르도 어느 샤토나 다 가격 대비 품질이 훌륭합니다. 물론 최고의 빈티지는 2000년과 2005년이지요. 67년도 언급이 잘 안 되지만 메를로가 잘됐던 해예요. 47년부터 50년까지 4년 연속 좋았어요.”

●페트뤼스를 몇 병이나 갖고 있나요.

 “양조 책임자는 해마다 12병을 받습니다. 나도 많이 마셨는데, 아들들도 나 몰래 마신 것 같아요. (웃음) 64년, 67년, 91년처럼 한 병도 안 남은 빈티지도 있지만, 그래도 몇 백 병은 있습니다.”

●우와~ 어디에 있나요.

 “쉿, 비밀이에요.”

●페트뤼스는 언제 마시나요.

 “소중한 사람과 마셔요. 크리스마스에는 아들들과, 1월 1일에는 친구들과 페트뤼스를 땁니다. 얼마 전엔 친구가 불운한 일을 겪고 우울해 하기에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땄습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외쳤다. “저도 우울해요.”

j 칵테일 >> ‘부러운 녀석들’

2001년 7월 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스 직원들이 런던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거래 성공을 자축하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4만4000파운드(약 8100만원)어치 와인을 마신 사실이 들통난 것. 와인 값이 담긴 계산서 내역은 이랬다.

▶ 1945년 페트뤼스 1만1600파운드(약 2140만원)

▶ 1946년 페트뤼스 9400파운드(약 1730만원)

▶ 1947년 페트뤼스 1만2300파운드(약 2270만원)

▶ 1900년 샤토 디캠 9200파운드(약 1700만원)

▶ 1982년 몽라셰 1400파운드(약 260만원)

 레드 와인 3병은 모두 페트뤼스, 나머지 2병은 화이트 와인이었다. 유명 셰프 고든 램지가 운영하는 이 레스토랑 이름도 공교롭게 페트뤼스였다. 고가 와인을 주문한 데 감격한 나머지 레스토랑 측은 약 400파운드(약 74만원)의 저녁식사 값은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은행 고객들이 항의하고 나섰고, 회사는 감찰 조사 후 직원들을 해고했다. ‘부러운 녀석들’이라는 반응부터 ‘어차피 회사를 나갈 마음이던 직원들이 페트뤼스를 마셔보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음모론까지, 이 사건은 페트뤼스를 둘러싼 또 하나의 일화가 됐다.

글=박현영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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